[쿠키뉴스=이준범 기자] 드디어 터졌다. tvN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에 출연한 배우 윤계상이 오랜만에 많은 시청자에게 사랑받게 된 것이다. 그가 연기력으로 호평받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소수의견’에서는 주인공으로 묵직한 사회적인 주제를 그려내기도 했고, 영화 ‘극적인 하룻밤’에서는 발랄하다 못해 발칙한 로맨틱 코미디로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문제는 큰 흥행이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지난 29일 서울 북촌로 한 카페에서 만난 윤계상은 지금까지의 시기를 ‘슬럼프’라고 표현했다. 대중이 잘 알지 못했던 슬럼프를 스스로 겪었다는 의미였다. 지난 27일 종영된 ‘굿 와이프’는 그래서 그에게 더 특별한 작품이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에 출연한 건 2011년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최고의 사랑’ 이후 처음이다.
“‘굿 와이프’는 오랜만에 대중에게 사랑받은 작품이에요. 저 자신을 다시 다잡을 수 있는 작품이었죠. 이전 작품들이 제 목소리가 큰 작품들이었다면, 이번엔 사랑을 많이 받은 느낌이에요.
작품으로 사랑받은 건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너무 목말랐죠.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아서인지 에너지가 가득 차고 있어요. 오랜 슬럼프가 끝나는 느낌이에요.”
윤계상은 ‘굿 와이프’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을 걸 예감했다. 배우 전도연과 유지태가 함께 출연하는 것에 기대하긴 했지만, 첫 대본 리딩 때부터 ‘재밌다’는 확신이 들었다. 5년간 이어진 슬럼프를 끝내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윤계상은 짧지 않은 그 시간을 좋은 작품의 힘으로 견뎠다.
“좋은 작품을 찾으면서 견뎠어요. 기다리면 다시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죠. 저도 이젠 이치를 아는 나이가 됐잖아요.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아니까요. 중간에 찾아오는 침체기를 잘 보내야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소수의견’이나 ‘죽여주는 여자’ 같은 우리 사회에 관해 얘기하는 작품성 있는 작품을 선택했어요. 중간에 그룹 지오디(god) 활동도 했고요.”
배우로 12년 동안 활동했지만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는 윤계상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다. ‘굿 와이프’로 배우 인생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딘 그룹 애프터스쿨 나나에게 선배로서 충고를 건네기도 했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수식어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왜냐면 우리는 시작부터 좋은 역할을 맡았잖아요. 다른 배우들에게 너무 죄송한 점이죠. 그렇다고 우리가 그걸 거부하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나나는 이번에 제가 뭐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너무 잘했어요. 대신 다음이 힘들 거라는 얘기는 해줬어요. 잘하면 그만큼 기대가 많이 높아지잖아요. 더 냉혹한 평가를 받게 될 테니 준비 잘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라고 말해줬죠.”
이날 인터뷰에서 윤계상은 선배 배우인 유지태의 칭찬을 길게 늘어놨다. 유지태의 따뜻한 눈빛을 직접 받아보고 싶다는 얘기까지 했을 정도로 그의 연기에 반한 눈치였다. ‘굿 와이프’의 팬들은 거꾸로 윤계상이 유지태가 연기한 이태준 검사 역할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윤계상은 지금보다 훨씬 악랄한 이태준이 됐을 거라고 말했다.
“제가 이태준 역할을 맡았으면 지금처럼 설득력 있는 인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훨씬 악랄하고 못된 이태준이 되지 않았을까 싶죠. 못되고 끝까지 치졸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은 목마름이 있어요. 하나도 안 멋있고 세상 욕을 다 먹을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그런 역할이 재밌는 것 같아요. 왜 그러는지 설득력이 없는데 설득을 시켜야 하니까요.”
‘굿 와이프’는 윤계상에게 연기의 새로운 재미를 일깨워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러 명의 좋은 배우들과 함께 출연한 것도, 연기하는 재미를 크게 느낀 것도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윤계상은 아직도 “연기가 너무 재밌다. 안 하고는 살 수가 없다”고 단언하며 웃었다.
“다음에도 이렇게 좋은 배우들과 같이 출연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주연과 조연이 확실히 구분됐는데 요즘엔 주·조연이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어느 한 인물도 빼면 안 되는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있죠. 다른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며 자극을 많이 받아요. 열심히 하는 배우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커요. 하면 할수록 더 좋아지죠. 연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어요. 이게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요?”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