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최순실 발 ‘코리아 씨어터’가 우악스럽고 조소어린 풍자거리를 쏟아내며 자국민들의 ‘웃픈’ 표정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차라리 60년대 어느 악단의 광대놀음이라면 맘껏 웃어젖힐 터인데, 마주하는 부조리는 우리네들의 고단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씁쓸하기만 합니다.
‘최순실 게이트’는 우리나라에서 재벌-정치인의 정경유착이 얼마만큼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라의 머리인 대통령이 이렇듯 국정을 사사롭게 주무르고, 정의를 앞세운 사정당국과 대기업 총수들이 끈덕지게 판을 짠 모습을 보자면, 이러려고 이 나라 국민이 됐나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물론 이 나라 국민이 될 줄 알고 세상 빛을 본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형 정경유착의 견고함은 우리로 하여금 절망을 느끼게 합니다. ‘최순실’이란 이름 석 자가 의문스런 재단에 삽시 800억 원이 모이게 한 것을 보고 있자면 일하던 손의 힘이 스르르 빠집니다. 그리고 이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죠.
밥값이 3만원이 넘느냐 안 넘느냐로 사회가 떠들썩한 사이 ‘문화·스포츠 진흥’을 골자로 천문학적인 돈이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나타났습니다. 자금의 출처는 삼성·현대차·SK·롯데 등 대기업인데, SK와 롯데의 경우 대가성으로 면세점이 선정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수금의 주체로 지목된 전경련은 극우 정치청탁 시위단체인 어버이연합을 후원해온 단체입니다. 정경유착이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 합니다. 현재 그 돈은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조사대상에 올라 있고, 이재용 삼성 부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은 청문회 증인으로 불려갔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1세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국민먹튀’ 김경준과의 끈을 퇴임과 함께 기어코 잡아 뜯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BBK, 다스, 청계재단, 맥쿼리 인프라 등의 의혹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양 잠재웠죠. 그는 ‘경제 대통령’으로 기억될 터입니다.
영화 위플래시(Whiplash)에서 폭군으로 묘사되는 플래처 교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말은 ‘이만하면 됐어’야”
우리나라가 대기업 중심으로 고도성장한 배경에는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은 대체로 살만한 세상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한국형 정경유착’ 내지는 ‘기업형 부조리’를 견고하게 키워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안정을 택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 사는 거 아닌가?” “대기업이 무너지면 당장 우리 생활고도 무너질 텐데” 미셸 푸코가 말하는 권력담론에 의한 원형감옥이 완벽히 작동하게 된 셈입니다.
최순실 게이트로 적나라하게 들춰진 사회적 부조리는 ‘인지’를 낳았고, 국민들에게 강한 문제의식을 심었습니다. 일종의 구심점을 만든 셈인데, 이후 대한민국이 느끼는 좌절은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우리가 만족과 안정에 함몰돼 살아왔음을 일깨워줬죠.
얼마 전 이재명 성남시장은 시위현장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공평하게 대우받은 일이 없다”면서 이번 사태를 전 방위적 개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코멘트로 쿡기자를 마무리합니다.
“이번 사태의 몸통이 최순실인가? 박근혜는 몸통인가, 머리인가? 이 사건의 몸통은 박근혜도 아니다. 새누리당이 집권을 위해 박정희 향수를 이용하려고 만든 ‘생각도 없는’ 인형이다. 이 사태의 몸통은 새누리당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몸통은 새누리당이고 (소속 의원들이) 손발, 심장, 장기들이지만 그 뿌리는 바로 재벌이다. 친일자본이었고 독재세력으로부터 특혜를 받았으며 국민의 세금으로 살찌웠고 지금은 이 나라 정치권력을 포함한 모든 권력을 독점했던 바로 그 재벌들이 이 사건의 뿌리다.…저들은 특권을 이용해서 부정하게 축재했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부당하게 이득을 얻었다.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기술을 탈취해서 창고에 무려 750조의 현금을 쌓아놓고 이 나라 경제를 망친 책임자다. 이제 재벌체제를 해체하고 노동이 존중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정하게 기회를 누리고 공정한 경쟁질서 속에 기여한 만큼 배분되는 그런 나라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dn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