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인세현 기자] ‘쉬리’ ‘로스트’ ‘엄마’… 배우 김윤진과 함께 연상되는 단어는 각기 연관성이 없지만, 개별적으로는 분명한 색을 지닌다. 김윤진은 영화 ‘쉬리’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으며, 이후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 출연해 연기 영역을 넓혔다. 그는 드라마 ‘미스트리스’ 시리즈의 주연을 맡는 등 활발히 미국 활동을 하면서, 국내 영화에 출연한다.
김윤진은 한국영화에서 유독 모성애가 강한 엄마 역할을 자주 맡았다. 다음달 5일 개봉을 앞둔 영화 ‘시간위의 집’에서 김윤진이 연기한 미희 또한 아이를 위해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엄마다.
31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진은 “또다시 어머니 역할을 맡았다”는 질문에 “모성애만큼 단번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코드가 없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 영화 ‘시간위의 집’도 모성애라는 정서를 바탕에 깔아 자칫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에 힘을 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엄마’라는 말을 하면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나요. 모성애는 그만큼 공감대가 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위의 집’은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는 영화죠. 하지만 여기에 모성애가 더해져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로 완성된 것 같아요.”
자칫 비슷해 보일 수 있는 역할을 연기하면서 김윤진이 염두에 두는 것은 다른 색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김윤진이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은 대부분 누군가의 엄마였지만, 성격과 동기는 제각각이었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연기한 엄마의 성격은 전부 다르단 거예요. ‘6월의 일기’가 엄마의 복수라면 ‘세븐데이즈’는 아이를 찾는 엄마였죠. ‘하모니’는 아이를 보내야 하는 엄마였고요. 이번 영화에서는 운명을 바꾸는 엄마가 됐네요.”
김윤진이 이토록 다양한 엄마를 연기하는 것은 유독 여성 캐릭터의 폭이 좁은 한국영화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김윤진은 “시나리오를 볼 때 ‘이번에도 엄마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웃음을 보였다.
“제 나이 여배우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닐까요. 한국영화 여성 캐릭터의 한계인 거죠. 선택권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전작에 비해서 조금이나마 다른 색을 품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거예요.”
좁은 캐릭터 폭, 흥행에 대한 속설…. 김윤진은 이를 “여자 배우의 현실”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하고 그 안에서 다름을 찾는 것은 현실이 조금씩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에 힘을 보탤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윤진이 20대였을 때만해도 40대 여배우가 영화 주연을 맡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김윤진은 “내가 아직 주인공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다”라며 “변화는 이런 식으로 조금씩 꾸준히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돌아보면 ‘쉬리’의 이방희 이후 총을 든 여성 캐릭터가 점차 많아졌어요. ‘세븐데이즈’ 때만 해도 ‘여자 배우 주연의 스릴러? 절대 안 된다’라는 인식이 많았죠. 하지만, 잘 됐어요. 그 이후에 조금씩 그런 류의 영화가 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흐름이 다 제 영화 덕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흰색이었던 세상이 갑자기 검정색으로 바뀔 수는 없어요. 그러니 현실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해요. 현실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지만, 이 일을 시작했으니 긍정적인 흐름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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