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윤민섭 기자] ESPN이 10일(한국시간) 리그 오브 레전드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 본선 무대를 앞두고 출전 선수들의 파워 랭킹을 발표했다. 게 중에서도 SK텔레콤 T1의 ‘울프’ 이재완을 서포터 포지션 랭킹 2위에 둔 것이 화제가 됐다. 1위 자리는 대만 플래시 울브즈의 서포터 ‘소드아트’가 차지했다.
‘소드아트’는 출중한 실력을 갖춘 서포터다. 자신이 속한 리그에서 항상 빼어난 성적을 냈다. 국제무대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며 늘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팀들도 그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그러나 그가 이재완보다 더 뛰어난 서포터라고 생각하는 이는 이번 파워 랭킹을 작성한 ESPN 필진 타일러 에르츠베르거를 제외하면 몇 없을 것이다.
일단 ‘소드아트’에겐 롤드컵 우승 경력이 없다. 심지어 지역 대회 우승 횟수도 4회로 이재완과 동일하다. 롤챔스와 LMS 중 어느 리그가 더 권위 있는 대회인가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에르츠베르거는 지난해 롤드컵을 앞두고도 생뚱맞은 랭킹을 발표해 전 세계 e스포츠팬들의 빈축을 샀다. 그때는 중국 에드워드 게이밍의 ‘메이코’를 세계 최고의 서포터라 치켜세웠다. 이재완은 5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프레이’ 김종인을 원거리 딜러 랭킹에서 제외한 것도 인구에 회자됐다. 김종인 대신 ‘즈벤’과 ‘더블리프트’가 한 자리씩 차지했다. 두 선수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전체 랭킹에서는 ‘클리어러브’를 ‘스멥’ 송경호와 ‘페이커’ 이상혁에 이은 3위로 선정했다. 하지만 그를 비롯해 3개 포지션에 세계 최고 선수를 보유했던 EDG는 8강에서 락스 타이거즈에 3대1로 패해 탈락했다. 락스 타이거즈에는 세계 5위권의 미드 라이너도, 원거리 딜러도 없었다.
'최강 선수는 누구인가'를 따져보는 건 늘 화젯거리다.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호날두와 메시, 심지어 모 격투기 카페에서 허구하게 언급되는 오브래임 대 도사견까지. 모든 스포츠에서 우열 가르기로 논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팬들은 그걸 즐긴다. 이는 프로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법 중 하나다.
e스포츠라고 해서 별반 다를 건 없다. 그러나 기자나 필진 혹은 전문가로서 그 순위표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납득할 만한, 또 인정할 수 있을 만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올 해 ESPN의 파워 랭킹을 접한 이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뜨뜻미지근하다. 이미 이들이 신뢰를 잃었다는 증거 아닐까.
ESPN은 다른 종목에서도 이런 논란을 빈번하게 일으켰다. 지난 16년 초 ESPN의 NBA 담당 필진들은 역대 NBA 선수들의 올 타임 랭킹을 매겨 발표했다. 그들은 다수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댔으며, 선수들의 퍼포먼스와 업적을 고려해 순서를 매겼다고 말했다.
랭킹 1위는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었고 2위는 전설적인 센터 카림 압둘 자바의 차지였다. 이미 정설로 굳어진 순위였던지라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3위가 문제였다. ESPN은 아직 현역으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르브론 제임스를 NBA 역사 상 세 번째로 위대한 선수로 선정했다.
곧 전 세계 농구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팬들은 찬란한 NBA의 역사에 르브론만큼, 혹은 그보다 더 뛰어난 선수들이 있었다고 항변했다. 그때 ESPN은 그 선정 하나만으로 다른 99개 랭킹에 대한 권위를 상실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르브론은 스스로 3번째 우승컵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정규 시즌 역대 최고 승률을 경신한 스테판 커리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꺾은 결과물이었다. 불과 1년이 흘렀을 뿐이지만 이제 르브론의 순위에 토를 다는 이는 거의 없다.
르브론이 실력으로 전세계 팬들의 입을 다물게 했던 건 꽤 멋들어진 미담이 됐다. 그러나 ‘소드아트’가 이번 MSI에 순위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방금 막 끝난 MSI 첫 날 경기 결과를 보면 아무래도 이재완이 ESPN의 입을 다물게 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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