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유기’ 사고로 드러난 방송 제작 환경의 민낯, 악순환 고리 끊을까

‘화유기’ 사고로 드러난 방송 제작 환경의 민낯, 악순환 고리 끊을까

‘화유기’ 사고로 드러난 방송 제작 환경의 민낯, 악순환 고리 끊을까

기사승인 2018-01-04 17:16:23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가 사고가 발생한 tvN '화유기' 현장 조사 결과와 함께 대책 수립 요구안을 발표했다.

4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회의실에서 ‘화유기’ 제작 현장 추락사고 대책수립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앞서 지난달 23일 오전 1시50분쯤 '화유기' 촬영 현장에서 소도구 담당 직원이 3m 높이 천장에 샹들리에를 설치하다가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를 당했다. 해당 직원은 엉덩이부터 V자 형태로 추락하며 척추와 머리에 큰 충격을 입었고, 검진 결과 척추 골절로 하반신 증상이 나타나 수술을 진행했다.

언론노조 측은 사고 원인으로 스태프들의 피로 누적과 무리한 작업 환경을 꼽았다.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장시간 노동에 내몰렸고, 부실한 자재 위에서 안전 장비 없이 작업하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고를 당한 직원은 소도구 담당이지만 전기기사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이 해야 할 샹들리에 전선 연결 작업까지 해야 했다. 제작사 측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소도구 팀과 세트 팀에 전선 작업을 나눠 분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고를 목격한 MBC아트 미술1팀 직원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오전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작업을 하니까 피곤해서 정리를 하고 퇴근하려 했다”며 “아르바이트생 두 명과 정리를 마쳤는데, 사고를 당한 이준호 차장이 샹들리에를 갖고 오라고 했다. 미술감독이 샹들리에를 달아달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를 듣고 짜증은 났지만,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다시 연장을 챙기고 작업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와 아르바이트생이 사다리에 있었고, 이준호 차장이 천장에서 전선 작업을 했다”며 “천장이 ‘쿵’ 하고 무너지면서 이준호 차장이 V자 형태로 떨어졌다. 1~2분 간 의식을 잃었다. 난 차장의 다리가 경직되는 느낌이 들어서 다리를 계속 주물렀고, 아르바이트생에게 119에 신고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현장 조사가 여러 차례 이뤄졌다. 안성경찰서는 지난달 23일,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8~29일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사고 현장을 방문해 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사고 이후에도 현장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재발 방지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

최정기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사고 직후였음에도 현장은 어수선했다”며 “스태프나 배우들이 이동하다가 다칠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통로가 어지럽고 어두웠다. 바닥에 인화물질과 목재가 널려있었다. 화재가 발생하면 아무도 대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작 중단은 이뤄지지 않았고, 현재도 계속 촬영 중이다. 고용노동부 평택지청 근로감독관은 ‘천장 위 작업 중지’와 ‘목재 사다리 사용 금지’를 조치했을 뿐이었다. 언론노조 측은 “촬영장 안전 진단과 구체적인 개선 및 보완 대책이 수립될 때까지 사고 현장 작업은 중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장 조사 이후 이어진 면담에서도 제작사 측은 책임을 회피했다. 당시 샹들리에 설치를 지시했고 현장 책임자였던 JS픽쳐스의 이철호 미술감독은 “샹들리에 설치를 지시한 것이 아니라, 조명등을 달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고지했을 뿐”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이철호 미술감독의 하차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언론노조 측은 “제작사와 1차 협의 때 ‘이철호 미술감독을 촬영장에서 배제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며 “하지만 “이틀 전까지 촬영 현장에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 내놓은 개선 대책이 PD 1명 보강이었다”며 “당혹스러웠고 분노하기도 했다. 현재 드라마 제작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유감 입장을 표명한다”고 전했다.

언론노조 측은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제 제작 중인 모든 드라마 현장 실태조사’와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 준수’, ‘CJ E&M의 구체적인 개선 방안’, ‘추가 쟁점 조사와 안전 대책 강구’, ‘드라마 제작 관행과 시스템 변화’,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 피해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한 노력’까지 총 여섯 가지 요구 사항을 밝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언론노조 측은 “조합원 가족에게 위로를 전한다”며 “열악한 방송 제작현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소도구 스태프는 방송 제작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약자로 대변된다. 이번 사건으로 화려한 조명과 무대 뒤의 진실과 그들의 수고, 희생이 재조명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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