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현대차였다. 지주사 체제 전환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이번 지주사 체제 전환으로 정몽구, 정의선 현대차그룹 오너 부자는 약 6조원의 사재를 들여야 한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이다. 이 금액은 약 4조~5조원으로 추정된다.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현대차-기아차-모비스-현대차',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4개인데, 기아차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털어내면 고리가 모두 끊어지는 구조다.
현대모비스 모듈·AS부품 사업을 인적 분할하고 현대글로비스가 흡수 합병 과정을 거치면 정몽구·의선 부자는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하고 있는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 전부를 매입할 계획이다.
기아자동차,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은 현재 현대모비스 지분을 각각 16.9%, 0.7%, 5.7%씩 보유하고 있다.
매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기아차에 매각하는 등 계열사 지분을 적극적으로 처분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정 부자는 양도소득세도 내야한다. 최소 1조원을 훌쩍 뛰어 넘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측은 양도세 규모가 해당 시점의 주식 가격, 매각 주식수에 따라 다르게 계산되겠지만, 최소 1조원을 훌쩍 뛰어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올해부터 대주주 대상 과세표준이 3억원 이상인 경우, 양도세율이 주식을 매각하여 생긴 소득의 22%에서 27.5%(주민세 포함)로 상향 조정된 점도 반영됐다.
연간 국내 전체 주식시장에서 거둬들이는 주식 양도소득세 규모가 약 2조~3조원(2016년 개인 기준)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두 대주주가 낼 세금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최근까지도 투자 및 증권 업계는 출자구조 재편과 관련 현대차그룹이 일부 계열사의 투자 부분만을 따로 떼 지주회사를 만들어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하는 방식의 시나리오를 예상해 왔다.
이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지주사에 현물출자 함으로써 그룹 전체 경영권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대주주가 바로 양도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돼 대주주의 초기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경영권을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에서는 주주가 지주사에 현물출자를 하면서 발생하는 양도차익 금액에 대해서는 해당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양도소득세 과세를 이연해 주고 있다. 관련 규정은 올해 안에 일몰된다.
하지만 이 방식은 대주주가 세금 한 푼 안내고 회사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비판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많은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현물출자 방식을 취해 주주들과 시장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재편 과정은 대주주가 지분거래에 대한 막대한 세금을 납부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방식과 확실히 차별화 된다.
현대차그룹이 현물출자 방식의 지주회사 전환 구상을 접고 현대모비스를 최상위 지배회사 체제로 구조 개편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차그룹이 시장에서 예측했던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경우, 대주주가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지주회사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대주주는 최상위 회사 지분율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대규모 세금을 내고 사회적 명분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는 평가다.
대주주의 이러한 과감한 결정은 결국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실(失)보다는 득(得)이 더 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대차그룹이 이와 같이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 개편 절차를 택함으로써 불필요한 소모성 논란은 최소화되고 현대차그룹의 재편 취지에 대한 진정성은 부각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대주주가 사회적 책임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위상을 제고하게 될 뿐 아니라 주주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원동력을 갖추게 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최고 경영층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함에 따라 적법하고 정당한 지배구조 개편 방식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이번 개편 안이 사회적 지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주주들과 시장에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 기자 ho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