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들이 데이터 이용료를 면제해주는 ‘제로레이팅’(zero rating)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신규 수익원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망중립성에 어긋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갤럭시노트9 출시에 맞춰 시작된 프로모션이 새로운 갈등의 신호탄으로 비화되고 있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제로레이팅은 통신사와 콘텐츠 사업자가 제휴를 맺고 이용자가 특정 콘텐츠(게임·영상·음악)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데이터 이용료를 할인 혹은 면제하는 제도다. 이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는 데이터 요금을 아낄 수 있고, 통신사업자(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고객에게 받을 요금을 콘텐츠 사업자에게 얻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같은 장점을 눈여겨 본 이통사들도 발 빠르게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최근 KT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9 판촉을 맞춰서 ▲피파온라인 4M ▲검은사막 ▲배틀그라운드 ▲오버히트 4종을 KT가 유통하는 갤럭시노트9에서 다운받아 이용하는 이용자에게 올해 연말까지 데이터 요금을 받지 않는다.
SK텔레콤도 다음달부터 13~18세 중·고등학생 가입자를 위한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시작한다. 넷마블·네오위즈 게임과 10대들이 즐겨 쓰는 10여개 앱을 데이터 차감 없이 쓸 수 있도록 제공할 계획이다.
현재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2019년 3월 상용화될 5G 투자비용을 현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 아래에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요금제로 회수할 수는 없고, 제로레이팅을 통한 서비스 확대가 신규 수익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제로레이팅이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과 다소 상반된다는 점이다. 망중립성은 인터넷을 도로·전력과 같은 공공재로 보는 입장이다. 망을 보유하지 않은 사업자도 차별 없이 망을 공공재처럼 이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제로레이팅은 자연스레 비용을 내는 콘텐츠 업체를 차별적으로 우대하고, 제로레이팅 비용을 내지 않는 업체는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내 관련 업계에서는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두고 이견차가 큰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통사들은 최근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4G 요금제 가격이 대폭 하락했다. 상용화될 5G 역시 크게 높은 가격에 요금제가 설계될 수는 없고 요금제를 통해 5G 구축비용을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수익보전을 위해 방안을 강구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통업계에서는 포털 등 대형 인터넷 기업들이 본인들이 발생시키는 트래픽은 생각 안하고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망중립성 훼손을 자꾸 들이댄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반면 IT기업 관계자는 “제로레이팅은 비용을 지불하는 특정 콘텐츠 업체를 우대하고 이용자 선택에 영향을 줄 여지가 크다”며 “망 이용료를 소비자 대신 내기 어려운 소규모 콘텐츠 사업자들이 뒤쳐질 경우는 생각 안해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외에도 통신사가 콘텐츠 시장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통사와 손잡은 콘텐츠 사업자가 이통사의 마케팅 효과와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통해 인기몰이를 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 많았다.
국내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자체가 문제다. 모든 인터넷 망 사업자들에게 제공하는 망을 차별하면 안된다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유권 해석의 영역이 너무 넓은 부분”이라며 “이통사도 포털도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나 서비스를 출시하기 어렵다. 결국 제로레이팅 망중립성 훼손 논란은 애매한 가이드라인으로 불붙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