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가 불가능해 발견 시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아야 했던 췌장암 환자들의 삶이 조금은 길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세대 광과민제를 이용한 광역학치료라면 평균 10개월의 시간을 더 벌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연구를 주도한 의사와 제약회사 간의 다툼이 장기화되며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환자들의 열망이 현실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 말 많고 탈 많은 2세대 광역학 치료제
광역학치료(PDT, Photodynamic Therapy)는 포르피린 계통과 클로린 계통의 광과민성 물질이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축적되는 성질을 이용하는 치료법으로, 피부암, 식도암, 설암, 자궁경부암, 대장암 등에서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최근엔 췌·담도암에도 효과가 있다는 결과들이 비공식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1세대 광과민제의 경우 투여 후 48~72시간을 기다려야하는데다 시술 후 최소 4주간 빛을 차단하는 차광기간을 가져야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개선한 제품이 2세대 광과민제 ‘포토론(Photolon)’이다.
포토론을 개발한 동성제약은 “1세대 제품과 달리 추여 후 대기시간이 3시간에 불과하고 차광시간도 2일이면 충분하다. 치료깊이도 4㎜정도였던 1세대에 비해 12∼15㎜로 깊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2015년 12월에는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고, 서울아산병원 췌담도센터 박도현 교수 주도의 연구자 임상시험을 지원했다.
문제는 2018년 7월, 동성제약 관계자의 입을 통해 박 교수의 임상2상 연구가 끝났으며 결과가 긍정적이었고, 해외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이라는 말이 기사화됨에 따라 주가가 급등하면서부터 벌어졌다. 당장 박도현 교수는 소속된 서울아산병원을 통해 연구자임상이 끝나지 않았으며 한동안 논문을 게재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병원 발표 후 연일 급등하던 주가는 한 달 새 반 토막이 났다. 한국거래소는 “사실과 다른 정보를 언론을 통해 공개하고 이로 인해 주가가 큰 폭의 변동이 있었던 만큼 이와 관련해 동성제약이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적극적인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동성제약은 “최근 서울아산병원에 확인한 결과 해외 학술지에 (임상시험에 대한 연구논문을) 아직 투고한 사실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실무자의 단순 실수로 인한 것이며 주가조작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그렇지만 이양구 대표이사는 올해 시무식에서 “동성제약은 광역학 치료사업을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정로환, 이지엔 염모제 등과 함께 미래먹거리로 꼽는 등 주력사업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2세대 광과민제 ‘포토론’, 임상결과는?
주가 조작논란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광역학치료와 2세대 광과민제에 대한 이양구 대표의 자신감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이 대표는 “정상세포는 살리면서 종양세포만을 파괴하는 광역학치료가 암환자들의 희망이 될 것”이라며 가능성을 시사했다.
임상시험 결과가 아직 발표되진 않았지만 기대할만한 효과가 있었으며 향후 치료가 어려운 암환자들의 또 다른 선택지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실제 이들의 기대가 근거 없는 허구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논란이 한창이던 2018년 10월 20일부터 24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유럽 소화기내과 의사들의 축제인 ‘UEG(United European Gastroenterology) week 2018’이 열렸다. 그리고 행사 둘째 날인 22일 오전, 18번째 구두발표는 서울아산병원 박도현 교수의 ‘2세대 광과민제를 활용한 광역학치료 임상2상 시험결과’였다.
결과적으로 UEG 발표는 학술대회 직전 박 교수의 요청에 의해 취소되며 성사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EG는 요약본 격인 논문초록은 학술지에 ‘철회(withdraw)’라는 표기와 함께 실렸다. 여기에는 참여연구자와 연구의 의의, 연구과정과 결과 등이 간략하게 서술돼있었다.
초록에 따르면 박 교수는 2015년 1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절제가 불가능한 총 29명의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47번의 임상2상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에는 동성제약의 포토론과 광역학 치료를 위해 빛을 전달할 수 있도록 제작된 내시경초음파 기기(EUS)가 사용됐다.
광역학치료는 환부에 따라 120J/cm, 150J/cm, 200J/cm 3종류의 강도로 이뤄졌고, 1번의 시술시 평균 번(최소 3~ 최대 15번), 평균 3개의 바늘(1~8개)로 시행됐다. 그 결과 종양의 크기는 4666㎣(최소 928~ 최대 13411㎣) 가량 줄었다. 종양세포의 괴사정도는 중간값이 35.5%로 최소 5%에서 최대 100%까지 감소했다.
부작용도 거의 없었다. 박 교수는 초록에서 3개의 사례에서 열감(fever)이 발생했지만 자연치유가 됐으며 췌장염이나 광과민증 등 광역학치료와 연관된 부정적인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또한 치료에 앞서 받은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와도 큰 상호작용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결과적으로 176일간 종양의 진행이 없었고, 평균 수명이 304일 늘었다고 했다. 통상 화학요법 등의 치료를 했을 때 평균 수명이 70여일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4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이를 두고 제약업계 관계자는 ‘획기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박 교수도 초록에서 “췌장암은 지금까지 화학요법에 대한 반응이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의 광과민제(2세대)는 짧은 반응시간과 향상된 표적력 등으로 장애를 극복했다”면서 “부작용이 적고 효과도 좋았다. 특히 120J과 150J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가 있었다”고 서술했다.
박 교수가 제출했던 초록을 살펴본 의료진들도 초록의 결과대로라면 기존 방법으로는 치료가 어려워 ‘절망적인’이라고 교과서에 표현된 췌장암 환자들에게 생명연장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며 추가임상 등을 통해 보다 폭넓은 효과검증이 이뤄져야할 것이라는 공통된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이 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는 연구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향후 연구계획이나 방향, 환자들의 기대 등에 대해서도 병원을 통해 “할 말이 없다”는 답만을 전했을 뿐이다. 다만, 초록의 해석에 대해서는 연구결과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식의 답변을 병원을 거쳐 전했다.
이와 관련 병원 관계자는 “임상실험은 끝났지만 연구결과에 대한 발표를 기약하긴 어렵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박도현 교수는) 연구자 주도 임상이 순수한 연구목적이어야 하며, 연구결과로 인해 주가가 오르내리는 것이 연구자 윤리에 반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초록에서 기술된 연구결과에 문제는 없다”고 부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