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여행 5일째다. 어느 정도 시차에 적응이 되는지 전날은 우아(?)하게 책도 읽으면서 11시까지 버티다가 잠들었다. 덕분에 모닝콜이 올 무렵까지 푹 잤다. 이날은 8시에 숙소를 나서기로 했다. 리가 남쪽에 있는 룬달레로 이동해 룬달레 궁전(Rundāles pils)을 구경하는 일정을 먼저 시작하기 때문이다.
리가에서 룬달레까지는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일찍 출발해서 룬달레 궁전을 보고 리가 시내구경을 여유 있게 하자는 김영만 가이드의 배려다. 룬달레 궁전에서는 혼잡을 방지하기 위해 방문객의 입장을 조정하는데, 주로 나이가 많은 유럽의 관광객들은 여유를 부려가며 천천히 돌아보는 경향이 있어 이들을 만나면 마냥 기다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숙소를 나서는데 보니 하늘이 찌뿌듯하다. 아무래도 일기예보처럼 종일 비가 오락가락할 분위기다. 아침 기온은 18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서울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리가에 살고 있다는 김영만 가이드는 은퇴하고 살기에 라트비아가 좋다고 추천했다. 물가가 싸고 기후도 온화한 편인데, 사람들이 순박해서 지내기에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항공편을 비롯해 유럽 각국을 여행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다만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문제라고 하는데, 보건의료체계가 열악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평소 건강에 유념해야 할 것 같은데, 이곳 사람들은 별로 그렇지도 못한 듯하다. 발트연안국가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60여년에 머물고 있다는데, 생활습관이 문제라고 한다. 이들은 주로 고기를 즐겨 먹고 야채를 별로 즐기지 않으며, 심지어는 식사를 하고 바로 누울 정도로 운동과 담을 쌓고 산다고 했다. 거리에서 허리를 감싸 안을 수 없을 정도로 뚱뚱한 사람을 흔히 만날 수 있다.
기사가 늦어서 8시 반 무렵 숙소를 나섰다. 1시간 정도 갔을 무렵, 도로공사 중인 구간을 만났다. 며칠 전부터 자주 만나는 광경이다. 발트지역에서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인 동절기에는 도로공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9시 40분경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온통 잿빛인걸 보면 쉬 개일 것 같지 않다.
전날까지는 비가 심하게 내린 적이 없어 다행이다 하던 생각이 틀렸다. 지름길로 왔다는데도 룬달레 궁전에 도착한 것은 10시였다. 아침에 늦은 것도 그렇고 지름길이라고 고른 것이 공사판을 만나고, 도대체 우리 버스의 기사는 감도 부족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다.
주차장에서 궁전으로 향하는 길 양편으로는 오래된 마로니에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터널을 이루고 있다. 그래도 경부고속도로에서 내려 청주로 들어가는 도로의 옛날 풍경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룬달레 궁전은 마로니에 터널이 끝나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야 전체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한 룬달레 궁전은 흔히 표리부동하다고 한다. 외관은 바로크양식인데 내부는 로코코양식으로 꾸며졌기 때문이다. 공사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룬달레 궁전은 엘가바 궁전(Jelgavas pils)과 함께 지금은 라트비아 공화국에 속하는 쿠르제메(Kurzeme) 공국이 세운 바로크양식의 궁전이다.
1735년 쿠르제메공국과 젬갈레(Zemgale) 공국을 다스리던 에르네스트 요한 비론(Ernest Johann Biron) 공작은 여름별장을 짓기 위해 룬달레의 오래된 장원을 사들였다. 1736년 러시아제국에서 활동하던 이탈리아 건축가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Bartolomeo Rastrelli)가 맡아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1740년 공작이 러시아 제국에 의해 시베리아로 추방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가 그가 복위한 1762년 공사를 재개해 1768년 완공됐다. 공작은 1772년 사망할 때까지 룬달레 궁전에서 여름을 보냈다. 하지만 공작의 아들 페터 폰 비론(Peter von Biron)은 몇 차례 방문한 것이 전부였다.
1795년 쿠르제메 공국과 젬갈레 공국이 러시아 제국에 병합된 뒤에 예카테리나(Екатери́на Алексе́евна) 대제는 룬달레 궁전을 연인인 플라톤 알렉산드로비치 주보프(Платон Александрович Зубов) 왕자의 동생 발레리안 백작에게 선물했다. 백작이 죽은 뒤 젊은 미망인은 안드레이 페트로비치 슈발로프(Андрей Петрович Шувалов) 백작과 재혼했고, 궁전은 슈발로프 가문으로 넘어갔다. 1812년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를 공격할 때는 병원으로 사용했다.
1864~1866년 사이에는 러시아 제국의 발트해 총독인 표트르 안드레이비치 슈발로프(Пётр Андре́евич Шува́лов) 백작이 룬달레 궁전을 여름별장으로 사용하면서 궁전 여기저기를 손질해 궁전의 품위가 많이 떨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군은 룬달레 궁전을 사령부와 병원으로 사용했다. 전후 라트비아가 독립전쟁을 치루는 중에 베르몬타(Bermonta)의 방화로 룬달레 궁전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서러시아 자원봉사군이라고도 하는 베르몬타는 1918~1920년 사이의 러시아 내전동안 볼셰비키 군대에 맞서기 위해 독일군이 지원해 구성됐다. 그 실체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뒤 발트해 연안에 남아있던 뤼디커 폰 데어 골츠(Rüdiger von der Goltz) 장군 휘하의 자유군단(Freikorps)군을 우수리의 코사크 출신의 파벨 라팔로비치 버몬트 아발로프(Павел Рафалович Бермон (д) т-Авалов) 장군이 이끄는 발트해 지역에 주둔하던 러시아 제국의 특별 러시아군단과 합병시킨 군대였다.
5만에 이르는 병력은 대부분 자유군단 출신이었고, 발트 독일인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군이 붙잡은 러시아 포로였다. 독일은 베르몬타가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치와의 싸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발트해 연안에서 독일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속셈이었다.
1919년에 라트비아가 독일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베르몬타는 라트비아군을 공격했지만, 라트비아군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아 베르몬타군을 격퇴했다. 독립 후 룬달레 궁전은 라트비아의 농업부가 관리하는 가운데 재건돼 학교와 재향군인을 위한 시설로 활용되다가 교육부로 이관됐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곡물창고로 사용되는 등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전후에는 공작의 식당이 학교 체육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72년 룬달레 궁전 박물관이 설립되면서 복원이 시작돼 2014년 마무리됐다.
궁전 정면의 중앙에 있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장에 앞서 덧신을 신어야 한다. 나무로 된 건물의 바닥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준비를 마치고 2층으로 오르면 먼저 황금의 방에서 구경을 시작한다. 벽장식이 모두 금색인데 이는 복원과정에서 금칠을 한 것이고 원래는 금박을 입혔던 것을 걷어갔다고 한다. 집무실, 식당, 침실, 등 모두 원본이 아니라 복제품이며 지하에 가면 부서진 원본의 조각들을 볼 수 있다.
2층에 있는 방을 따라가다 보면 창문을 통해 후원에 펼쳐지는 정원을 볼 수 있다. 정교한 기하학적 도형에 각종 꽃을 심어 화려하다. 1층으로 내려와서 정원을 기웃거렸는데 입장하는데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정원은 적당한 높이에서 굽어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 들어가면 꽃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는 있겠다. 다만 정원에 들어가 구경하는 일정은 없었나 보다. 입장료를 내야해서였을까. 아니면 리가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비가 오는 관계로? 모르겠다.
궁전의 내부를 돌아보는 동안 비가 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건물 밖으로 나오면 내리는 비가 많이 불편해진다. 비를 맞으면서 주차장으로 돌아가 버스를 탔다. 궁전으로 향할 때는 미처 눈길이 가지 않았지만, 마로니에 나무가 늘어선 길 밖에는 사과나무들이 관상수로 심겨있다.
에르네스트 요한 비론 공작이 죽은 다음 이곳에 머물던 공작부인이 조성했다고 한다. 관상용으로 조성된 과수원이기 때문에 누구나 얼마든지 따 먹을 수 있다. 우리 가이드가 일행 숫자대로 사과를 따왔다. 크기는 작지만 빨갛게 익어 보였다. 맛은 어땠을지 맞혀보기 바란다. 물론 관상용 사과나무라는 점을 고려하시기를….
리가로 돌아가기 위해 룬달레 궁전을 뒤로 하고 버스가 출발한 것은 11시, 룬달레에 머문 시간은 불과 1시간이다. 여행사 상품으로 하는 여행이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가수 김혜연의 노래 ‘서울 대전 대구 부산’처럼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 가는 느낌이 조금 그렇다. 그래서 구경할 곳을 따라 이동하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도 중요하다.
보통은 이동 중에 여행지에 관한 사항을 소개하는 편이고, 일행의 상황에 따라 쉴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도 있다. 그런데 발트여행을 안내하는 김영만 가이드는 발트연안국가에 관해 하나라도 더 설명하기 위해 자투리 시간까지도 마이크를 드는 열성을 보였다. 리가로 가는 길에는 EBS에서 방영한 ‘세계테마기행’의 라트비아 편을 봤다. 특히 노래축제 및 하지축제 등 라트비아의 세시풍속이 눈길을 끌었다.
여행을 안내하는 서진석씨는 외대 폴란드어과를 나와서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 발트어문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에스토니아 타르투 대학교 비교민속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금은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 카우나스에 있는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교의 아시아지역학과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학과 설화 등을 리투아니아어와 에스토니아어로 번역해 소개했으며, 발트연안국가의 소식과 문학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발트3국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을 위한 ‘발트3국 여행 완벽 가이드북’을 출간했다.
리가(Rīga)는 북쪽의 에스토니아와 그 영토인 사레마(Saaremaa)이 감싸면서 배추모양을 한 리가만(Rīgas jūras līcis)의 배추꼬랑지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다. 리가만은 에스토니아와 부속 사례마섬에 의해 발트해와 구분된다.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에는 2019년 기준으로 63만2614명이 살고 있는데, 이는 라트비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리가는 발트연안 3개 국가의 도시 가운데 가장 크다.
리가만으로 흘러드는 다우가바(Daugava) 강이 리가의 중심을 흐른다. 다우가바 강은 러시아의 발다이 언덕(Валда́йская возвы́шенность)에서 기원해 러시아, 벨로루시, 라트비아를 지나는 총 연장 1020㎞길이의 강이다. 최대 높이 346.9m인 발다이 언덕은 중앙 러시아에서 북서쪽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와 모스크바(Москва)의 중간쯤에서 남북으로 놓여있으며, 레닌그라드, 노브 고로드, 트베리, 프스코프, 스몰렌스크 주에 걸쳐있다.
융기 부분의 끝에는 빙퇴석 등 빙하의 퇴적물이 쌓여있다. 흑해로 흘러드는 다우가바 강을 비롯하여 카스피 해로 흘러드는 볼가 강, 흑해로 흘러드는 드니프르 강, 라도가 호수로 흘러드는 시야 강 등이 발다이 언덕에서 발원한다. 리투아니아어와 라트비아어 다우가바(Daugava)는 고대 발트어로 ‘많음’을 의미하는 ‘daudz’와 ‘물’을 의미하는 ‘ūdens’에서 유래한 것이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