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온라인을 떠돌고 있는 확진자 동선 정보, 이들의 잊혀질 권리는 언제쯤 보장될까?
코로나19 대유행 과정에서 정부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속속 공개했다. 인권 침해 우려가 커지자, 4월에 이르러서야 방역당국은 관련 지침을 통해 공개기간이 종료된 동선 정보에 대해 지자체 홈페이지 등에서의 삭제 조치를 내렸다. 문제는 인터넷 기사를 비롯해 포털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여전히 확진자의 구체적인 동선 정보가 떠돌고 있다는 점이다. 확진자 당사자를 비롯, 동선에 거론된 업장의 운영주는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확진자 동선 공개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계기는 프랑스의 프라델 변호사가 현지 언론에 “한국은 감시와 밀고에 있어서 세계 두 번째 국가”라고 쓴 칼럼 때문이었다. 비록 그의 주장이 상당부분 부풀려져 국내에서는 비판적 여론이 일었지만, 감염병 창궐 상황에서 ‘인권’의 가치가 옹호돼야 한다는 충격요법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과도하게 사생활정보가 노출돼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정보공개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우려한 바 있다. 또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도 우리나라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국가에서 코로나19를 빌미로 제한 없는 비상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비상 상황은 인권 의무를 무시해도 되는 백지 수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인권 보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희우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개인의 정보 인권을 제한하기 위해선 제한적 조건에서 실행돼야 한다”며 “동선을 공개함에 있어서도 확진자의 동선 대신 데이터만 공개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방역당국 입장에서 아픈 지적이다. 방역당국은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병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던 사실을 의식,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질병의 확산 양상, 동선 등의 공개에 적극적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인권 침해 우려는 방역정책 결정 과정에서 비중있게 다뤄지지 못하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희우 활동가는 "(정부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나치게 세세하게 공개해 개인의 신상이 노출되고 피해가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자체의 확진자의 동선 정보에는 성별·성씨·직업·국적·종교 등이 포함돼 확진자가 누구인지를 식별할 위험성이 존재했다. 희우 활동가는 “확진자의 국적보다는 어떤 국가를 방문하고 입국했는지의 정보, 처제와 식사 뒤 감염됐다는 확진자와의 관계보다는 XX번 확진자와 식사했는지 등의 정보가 더 중요하게 다뤄졌다"면서 "어떤 경로로 감염됐는지 확인만 하면 됐는데, 공개되는 개인정보가 최소화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확진자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며 거듭 도마에 올랐다. 참고로 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과학기자협회가 개정한 감염병 보도준칙에는 다음의 구절이 포함돼 있다.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는 국민의 생명 보호와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무엇보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보도해야 한다. 과도한 보도 경쟁으로 피해자들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그러나 보도준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관련 보도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언론이 사안을 어떻게 다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소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의 말이다. “감염병 보도준칙에 따라, 언론은 감염병을 예방하고 확진자의 인권을 최우선에 두고 보도를 해야 함에도 언론 스스로 혐오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었다. 확진자를 비난토록 유도하는 기사와 이를 무비판적으로 베껴쓰는 언론들이 방역이나 예방, 인권을 고려했다고 보기 어렵다. '확진자=위해를 가할 가해자'로, '비감염인= 잠재적 피해자'로 인식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감염병 예방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언론은 감염병 보도준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관련해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환자 발생 지역에 대한 보도는 거주민에게 크나큰 공포를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정확한 과학적 근거와 전문가의 인용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소주 활동가도 “불필요한 개인정보는 삭제 지침을 중앙정부가 만들어도 지자체가 따르지 않거나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며 “선언적 지침이 아닌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1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관련 단체에 14일이 지난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 정보가 드러난 기사에 관련 내용에 대한 음영처리 등 자발적 참여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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