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1884년 영국 런던. 통계학자 프란시스 골턴이라는 사람이 런던 국제박람회장에서 재밌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황소 몸무게를 맞히는 대회가 열렸던 건데요. 종이에 본인이 생각하는 황소의 몸무게를 적어낸 뒤, 실제 몸무게와 가장 근접한 답을 낸 사람이 돈을 가져가는 게임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소에 대한 지식이 없는 800명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대회에 참가한 사람 모두 황소의 무게를 정확하게 맞추지 못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골턴은 사람들이 적어낸 숫자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800장의 종이 중 글씨 판독이 불가한 13장은 제외했고요. 나머지 787장에서 나온 숫자들을 전부 합산해 나눠보니 나온 결과가 1197파운드였습니다. 실제 소 무게 1198파운드와의 1파운드 차이가 났을 뿐이죠. 가축전문가들의 예측보다 정확한 결과가 나오자 골턴은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의 판단이 모이니 정확한 답이 나오는 구나. 골턴의 황소 이야기는 집단지성의 위력을 거론할 때 자주 쓰입니다. 다수의 지혜가 모이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집단지성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정의되나 봅니다. 최근 대학가에서 잇따라 발생한 집단 부정행위 이야기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대학은 비대면 수업은 물론 시험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하대를 시작으로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건국대, 서울시립대, 한국외대, 중앙대 등에서 학생들이 시험 답안을 공유하고 과제물을 베끼는 등의 부정행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부정행위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한국외대의 한 교양과목 기말고사에서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이용한 정답 공유가 이뤄졌는데 이 안에서 수강생들은 “집단지성을 이용해 보자”며 서로를 격려했죠. 쿡기자가 취재를 위해 만나본 여러 학생들도 “이상하다는 걸 느껴도 ‘이것은 부정행위가 아니라 집단지성이다’라고 치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면서 “당장의 시험을 잘 봐야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고, 좋은 학점은 곧 취업을 위한 기본이 되니 양심을 속이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지성의 상아탑에 있다는 학생들이 부정행위와 집단지성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부정행위에 가담했다’ 이것이 모두가 알고 있고, 집단지성을 운운하는 학생 자신들도 아는 ‘사실’입니다. 부정행위로 축적해온 경험들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온전한 자신의 실력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빠르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대학가에서 부정행위자를 적발하고 처벌하려는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성적을 위해 윤리를 버리지 않으려는 개인의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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