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10일 방송한 MBC ‘다큐플렉스’의 부제는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였습니다. 제작진을 대신해 답하자면, ‘우리 사회가 여성 혐오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론과 대중은 설리에게 ‘여성 연예인다움’을 강요했습니다. 그 기준을 벗어나면 설리를 쉽게 모욕하고 희롱했습니다. 그게 정당한 비판이나 점잖은 계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설리는 홀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죽음은 사회 전체에 부채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다큐플렉스’는 설리의 인생을 왜곡하고 모욕하던 이들을, 그리고 그 뿌리에 자리잡은 여성혐오를 가리키지 못했습니다. 다만 설리가 생전 겪은 고통을 개인적인 불행으로 축소했습니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면, 방송을 이렇게 만들어선 안 됐습니다.
‘다큐플렉스’는 연습생 시절 설리가 체중 검사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는 인터뷰를 넣었으면서도, 여성에게 마른 몸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선 침묵했습니다. 설리가 데뷔를 위한 훈련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느라 고된 나날을 보냈다고 말하면서도, 연예인의 정신건강을 착취하는 연예 산업의 이면을 짚진 못했습니다. 설리가 SNS에 공개한 사생활이 부당하게 비난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설리가 연인과 입 맞추는 사진엔 “연애 당시 SNS 영상과 사진들로 논란을 일으킨 설리”라는 자막을 썼습니다. “외모 칭찬도 평가”라고 지적했던 설리를 돌아보면서도, 설리가 얼마나 예쁜 외모를 가졌는지를 설명하는 데 5분 이상을 할애했습니다.
‘다큐플렉스’는 악플러와 연예매체를 비판하면서도 그들을 타자화했습니다. 하지만 설리를 향한 모욕은 특별히 나쁜 개개인이나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설리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회, 여성을 쉽게 미워하고 깎아내리는 사회 말입니다.
MBC도 그 사회의 일원이었습니다. 자사 연예 정보 프로그램인 ‘섹션TV 연예통신’에선 설리의 사생활을 두고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자사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선 ‘주목 받고 싶으면 설리에게 물어봐라’는 식의 저열한 농담을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반성은 없었습니다. 한때 설리를 ‘노이즈 마케팅의 귀재’라고 썼던 비평가도, 설리에 대한 저열한 기사를 내보냈던 언론사 기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평가는 언론을, 언론은 악플을 문제 삼으며 폭탄을 돌리듯 비난의 화살을 떠넘겼습니다. 이것이 ‘유체이탈’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입니까.
가장 거대한 빌런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설리의 사생활을 관음하고 그의 신체를 성애적인 시선으로 보면서도 정작 설리 자신의 성적 욕망은 인정하지 않는 여성혐오적 이데올로기. 여성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퍼나르며 ‘논란’으로 확대하는 비윤리적인 보도가 여기에서 비롯합니다. 경쟁적으로 비난하고 즐기듯 모욕하는 사회가 여기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여성혐오를 끝장내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숙제는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여성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를 반성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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