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니프레스] 고병찬 연세춘추 기자 = 벌써 학보사 기자로서 보낸 한 학기의 끝자락이다. ‘학보사 기자는 처음이라’ 서툴렀고, 여러 부침도 겪었다. 누군가 ‘만 번은 흔들려야 학보사를 떠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이제 고작 한 학기를 보냈을 뿐이니까 한 4000번 정도 흔들렸을까. 그 수많은 흔들림 속에서 얼마 전 쓴 기사에 달린 페이스북 댓글은 크게 나를 고민하게 했다.
나는 노동을 주제로 한 기사를 많이 썼다.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k-노동’ 전문 기자라는 호칭으로 불릴 정도였다. 얼마 전 발행한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기사는 ‘k-노동’ 시리즈의 하나였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이 기사에 댓글이 달렸는데, ‘왜 연세춘추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나요?’라고 묻는 댓글이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그 댓글을 달아주신 분의 속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학보사가 왜 이주노동자를 다루냐는 물음인지, 왜 소위 ‘SKY’ 대학생이라는 너희가 마주하지 않을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냐는 물음인지 헷갈렸다.물음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리기 어려웠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고매한 지식인임이 틀림없을 한 사람은 “모르겠으면 되돌아가라”고 했다. 한 학기 동안 직접 취재하거나 접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내가 왜 ‘k-노동’ 전문 기자가 됐는지, 왜 그 기사를 발행하고 싶었는지 되짚어봤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했던 취재원은 ‘사회복무요원’이었다. 20대 남성들은 안보 상황을 이유로 헐값에 징집당한다. 그중에서도 ‘사회복무요원’은 현역으로 복무하기엔 신체·정신적 조건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국가 안보와 상관없는 곳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국제노동기구 ILO는 ‘군사적 노동이 아닌 제재의 위협 때문에 강요되는 비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를 강제노동이라고 정의한다. ‘사회복무요원’에 딱 들어맞는 정의다.
또 가까운 거리에 대학원생이 있었다. 이들은 엄연히 연구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지난해 말 경북대에서는 한 대학원생이 연구 노동을 하던 중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피해자의 가족에게는 치료비로 수억 원이 청구됐다. 경북대가 치료비 지급을 회피하는 사이 이들에겐 4억여 원의 빚이 생겼다. 만약 대학원생도 노동자로서 그 지위를 인정받았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을 통해 적어도 치료비 걱정은 덜 수 있었을 것이다.
거리를 누비는 라이더들도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노동자였다. 코로나19가 지속하며 사람들은 더욱 자주 배달음식을 주문한다. 이들은 ‘배민’과 같은 플랫폼사업자에게 사실상의 지시를 받으며 노동하지만, 법적인 지위는 특수고용직 또는 ‘사장님’으로 분류된다. 사고 위험과 고용의 불안정성은 ‘사장님’이라는 이름표로 인해 온전히 이들의 몫이 된다.
취재를 위해 만났던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은 “진짜 사장은 노동자에게 ‘사장’이라는 이름표만 붙여준 채 숨어있는 격”이라고 말했다.
조금 먼 거리엔 이주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내국인들이 기피 하는 업종에서 일하며 우리 사회를 떠받친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라는 제도 아래에서 사업장을 이동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이로 인해 사업주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항의하기 어렵다.
취재를 위해 만났던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우리가 한국경제의 밑바닥을 책임진다”면서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꾸짖었다.
한 학기 동안 ‘노동하는 사람이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라는 문장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 범주에는 수많은 직업군이 있었다. 나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은 척박했고,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권리 박탈자’는 곳곳에 존재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외에도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엔 너무 많다. 박 위원장의 말이 항상 머리에 맴돈다. “연세대를 다니는 사람의 친구나 후배 중에는 태안 화력 발전소에서 일했던 김용균이 없다.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명문대 중심의 사회 담론엔 그들의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칼럼을 빌려 내 기사에 댓글을 다신 분께 되묻고 싶다. ‘도대체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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