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은 생명연장을 위해 만들어진 불멸의 존재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은 서복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대가는 생명 연장. 여기에 정부 기관과 거대 기업이 충돌하며 기헌과 서복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다. 영화는 두 사람의 동행을 통해 삶과 죽음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감독이 꼽은 ‘서복’의 열쇳말은 ‘두려움’이다. 인간 욕망 이면엔 두려움이 있다는 게 이 감독 생각이다. 그는 데뷔작 ‘불신지옥’을 만들 때도 인간의 두려움에 집중했다. “‘두려움’은 일종의 필터에요. 무엇이 정의롭고, 의미 있는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 같은 필터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게 2013년. 처음 영화를 기획할 땐 ‘죄인 민기헌이 절대자 서복을 만나서 구원받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지금은 ‘한국형 SF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초고를 본 사람들은 ‘액션 없이 담론으로만 드라마를 만들어보자’고 했을 정도로 영화엔 철학적인 질문이 가독하다. 특히 “죽음이 두려운가요? 살아 있을 땐 행복했나요?”라는 서복의 질문은 스크린 너머 관객을 꿰뚫는다.
일각선 이런 직설 화법을 혹평하기도 했지만, 이 감독은 “직설적으로 물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질문”이라고 봤다. 직구로 던진 질문은 죽음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던 기헌의 발목을 붙든다. 관객들 역시 외면해오던 내면의 두려움을 똑바로 마주보게 된다. 이 감독이 ‘서복’을 만든 것 역시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삶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어서였다.
‘서복’의 결말은 마냥 슬프지도, 마냥 희망적이지도 않다. 두려움 때문에 파멸한 ‘불신지옥’ 속 등장인물들과 달리, 서복과 기헌은 “두려움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용기”를 내 서로를 구원한다. 무엇을 믿어야 두렵지 않느냐며 괴로워하던 서복은 ‘결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기헌에게 칼자루를 쥐어준다. 기헌은 용단을 내려 제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 마지막 순간엔 신적인 존재였던 서복과 죄인이던 기헌이 “합일”되는 듯한 인상도 든다.
심은경(‘불신지옥’), 조정석(‘건축학개론’) 등 충무로 루키 발굴에 일가견 있는 이 감독은 공유와 박보검을 ‘서복’에 불러들였다. “‘이 배우만 나오면 투자·배급은 다 해결된다’고 할 정도의 톱스타”와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단다. 이 감독은 “두 사람 모두 연기는 물론, 현장에서 태도와 격이 무척 좋았다”며 고마워했다. 군 복무 중인 박보검은 최근 휴가를 나와 ‘서복’을 봤다며 이 감독에게 안부 전화도 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서복’을 만들며 정신적으로 치유 받았다”고 말했다. 마지막 장면의 기헌처럼 이 감독도 “마음이 편해지고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영화를 만드는 게 업이지만 창작은 늘 두렵다. 결과를 보는 것도 무섭다. 하지만 이 감독은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말자. 다만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 겁먹지 말고 얘기하자”며 마음을 굳게 먹는다. ‘건축학개론’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이 감독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그는 “차기작을 위해 키워드 몇 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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