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동인도 아니고 정기적인 모임도 없다. 회비도 거두지 않는다. 사는 곳도 쓰는 곳도 모두 다르며, 국가나 지자체에 문화예술지원금도 신청하지 않았다.
2020년 우연히 마산에서 만나 아이디어를 나눴고, 코로나19로 인해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SNS를 통해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제대로 시적 난장을 펴 보자고 의기투합한 끝에 1년 동안 쓴 원고를 모아 이번 합동시집을 펴냈다.
시집은 게릴라성 합동시집 성격을 띤다. 필자들은 이 시집이 일회성으로 그칠 게 아니라, 경상도를 시작으로 전라·충청·강원·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합동시집 출간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새로운 반란으로 이어지기를 꿈꾼다.
'시는 자신의 무덤 속에서 무덤을 파헤치는 일'(유승영)이라는 일갈처럼, 문학의 본령에 복무하되 중앙 문단을 바라보기보다는 지역을 기반으로 창조적으로 움직이자는 게 이들의 모토이며, 합동시집에 이어 시골시인 다큐멘터리도 기획하고 있다.
시골시인이라고 자처한 이들은 권상진(경주), 권수진(창원), 서형국(고성), 석민재(하동), 이필(영주·서울), 유승영(진주) 시인이다.
이들은 "소위 중앙이라 불리는 문단에서 소외된 지방 작가들이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 사회에서 얼마든지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기 위해 원고를 취합하게 됐다"고 그 소회를 밝힌다.
시집 속에는 여섯 명의 시인이 써낸 10편씩의 시와 산문 1편, 그리고 각자 그린 자화상 캐리커처가 담겼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직업으로 살면서 쓴 신작시들은 독특한 개성과 치열한 시 정신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아이 셋을 억척스레 키우며 낙동강과 섬진강을 넘나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돌연 사람을 만나러 다니겠다고 선언한 이, 서울에서 진주로 내려와 논술 교사를 하면서 오지로 더 오지로 들어가 시를 쓰겠다는 이, 고성에서 연탄불고기 식당을 하며 당근마켓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시골시인으로 스며든 이가 바로 시집의 주인공들이다.
발문을 쓴 성윤석 시인은 "여섯 분의 시에 관심이 갔던 것은 밥하고 빨래하고 노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온 손으로 쓴 시들이었기 때문이다. 문학으로 출세하고 돈 벌고 성공하기 위해 책상에서 공부하고 대학원 가고 인맥 쌓아 상 받고 메이저 출판사에서 시집 내고 비슷한 경로를 밟아온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상찬을 받아온 분들의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며 이들의 행보를 적극 지지한다.
이들은 '시골시인-K'를 필두로, '시골시인-A', '시골시인-B', '시골시인-C'가 전국 각 지역에서 계속 이어져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이 합동시집의 수익금을 다음 시골시인 프로젝트를 위해 후원할 계획이다.
서울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문학계를 이제는 지역의 괴물들이 구해내야 할 때라고, 이 빨간 맛 좀 보라고 6인의 시인이 하이킥을 날린다.
△석민재 : 부산에서 태어나 하동에서 살고 있다. 2015년 <시와 사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19년 시집 <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를 출간해 그해 한국문화예술문학나눔도서에 선정됐다.(hadongtea@naver.com)
△권상진 : 머리를 숙여야만 별을 피해 다닐 수 있는 산동네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어엿한 경주시민으로 산다. 2005년 시에 들어 2013년에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고 2018년 시집 '눈물 이후'를 출간했다.
△유승영 : 지도에서만 보았던 진주가 아직도 낯설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지만 당분간, 또는 아마도 서울이 그립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서정과 현실'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8년 시집 '하노이 고양이'를 출간했다.
△권수진 : 마산에서 태어나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고는 줄곧 여기를 벗어난 적이 없다. 모교인 경남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함께 공부했다. 2011년 지리산문학제 최치원 신인문학상에 당선돼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토지문학제 <하동 소재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철학적인 하루'(2015년)가 있다.
△서형국 : 창원에서 태어나 현재 고성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2018년부터 몇몇 문예지에 글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에 매진 중이다. 식지 않는 문장을 배우려 불의 언어를 해독하고 있으며 아직 내 작문을 詩라고 부를 용기가 없다.
△이필 : 소백산 기슭 오지마을에서 태어났다. 안동으로 이사와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간장종지처럼 살았다. 2016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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