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지난달 21일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피해자인 이모 중사는 지난 3월 회식 자리가 끝난 뒤 선임 장모 중사에게 차량에서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이 중사는 피해 사실을 다른 상관에게 보고했으나, 상관들은 되려 이 중사를 회유하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지연·부실 수사도 계속됐습니다. 부대 전출을 요청한 이 중사는 휴가 복귀 나흘 만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이 중사의 혼인 신고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용서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한 가해자 장 중사는 구속됐습니다. 회식을 주선하고 “살면서 한 번쯤은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이 중사를 회유한 상관들은 보직해임 됐습니다. 군검찰은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제15특수임무비행단을 압수수색했습니다. 공군 참모총장은 사의를 밝혔습니다. 대통령은 분노했고, 정치권은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이제 없습니다.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피해사실을 털어 놓았을 때, 상관은 회유와 압박이 아닌 피해자 지원을 했어야 합니다. 은폐 시도가 있었을 때, 군 당국은 지휘 보고 체계를 점검하고 엄중한 수사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지난 2017년 ‘상관으로부터 성폭행 당했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군 여군 대위 사건에서 군은 제도를 보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합니다. 더 앞서 2013년 직속상관의 성관계 요구에 시달리다 세상을 저버린 육군 여대위 사건에서 군은 강력한 대책 마련과 함께 폐쇄적인 문화를 바꿔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놓쳐야 우리는 부정한 사회를 고쳐나갈 수 있는 걸까요. 죽어야 받는 사과, 죽어야 제대로 진행되는 수사, 죽어야 시작하는 조직의 성찰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누군가 죽지 않아도 바뀌는 세상은 올까요. 홀로 절망을 반복했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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