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리포트] 울지 마, 유키

[안태환 리포트] 울지 마, 유키

글·안태환 의사, 칼럼리스트 

기사승인 2021-08-05 08:54:17
친지로부터 입양한 하얀색 고양이를 가족들은‘유키’라 작명하였다. 딱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반려동물에 대한 초심자의 마음으로 순하게 커달 란 의미였다. 유키는 아이들의 성장과 동행했다. 가족의 일원이 된 이후 유키의 시샘은 유독 남달랐다. 가족들의 사랑이 성에 차지 않으면 굳은 심술을 부리기 일쑤였다. 유키에 대한 가족들의 사랑도 경쟁적이었다. 통상, 고양이는 애교가 없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보인다. 과한 친근함을 표하지도 않으며 매우 자주성을 지닌 동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사람이 고양이의 관심을 받으려 애를 쓴다. 그래서인지 유키는 특별했다.

유키가 많이 아프다. 어렴풋이 15년 근간이 고양이의 수명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쉬이 이별을 채비하게 될 줄 미처 몰랐다. 근래 들어 유키의 폐는 물이 차고 호흡은 거칠다. 보호자가 아닌 이비인후과 의사로서도 유키의 건강은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다. 어느 순간 유키와의 당연시되던 일상은 조바심으로 다가왔다. 흐르는 것이 시간뿐이 아닌 사람도 동물도 함께 흐르고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실 앞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이별 없는 만남은 없다는 숙명을 받아들이기엔 가족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딱히 동물을 가까이하는 성향은 아니었다. 의사로서의 삶은 때로는 균형이 안 맞아 덜덜거리는 세탁기의 소음처럼 소란스럽고 고단한 시간에 포획되어 있기도 한다. 고단한 어느 날, 독서가 주는 위안을 찾아 어네스트 헤밍웨이의‘빗속의 고양이’를 읽은 후로 고양이에 대한 급호감이 갔다. 유키, 입양의 동기였다.

유키의 건강 악화는 올봄부터 시작되었다. 날렵한 동작과 예민하던 감각은 둔탁해졌고 장난감 먹이를 제압하던 야성도 이내 잦아들었다. 가족들의 부름에도 만사 귀찮다는 듯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무렴부터 유키의 건강을 의심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둔하고 무심했던 것은 유키가 아닌 가족 모두였다.   

유난히 활동적이고 사람을 잘 따르던 유키는 자신을 돌봐주던 가족들에게 변치 않는 따스함과 위안의 존재였다. 고양이 특유의 시큰둥함으로 서운함을 주기도 하였지만 보호자에 대한 충성심은 한결같았다. 그러나 우린 이기적이었다. 고양이 특유의 본능을 발현할 환경을 제공하지도 못하였고 타고 난 야성은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가로막힌 아파트 내에서 거세되어갔다. 유키를 사랑한 만큼의 배려는 부족했다. ‘애완’할 조건을 갖추지 못한 인공적 과잉보호였다.  

병원에 오는 환자들 중 간혹‘애완동물’을 데리고 오는 환자들이 있다. 호흡기 질환 환자가 많아 병원 내에서 동행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가족과의 잠시 이별에 대한 불안한 눈빛을 보면 유키의 보호자로서 이심전심이 된다. 언제부터인가 개나 고양이를 애완동물이라 표현하다가 ‘반려동물’이라 부르고 있다. 장난감 개념의‘애완’보다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반려’의 의미는 문명적 사고의 전환이었다. 살아있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영혼이 있다. 거칠고 모진 인생에서 조건 없는 이해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반려동물은‘영혼의 동반자’라 칭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유키가 그랬다. 

다른 생명의 고통을 자기화하는 것이 인간의 자격이다. 반려동물도 사람과 똑같이 감정이 존재하고 고통을 느낀다. 그러하기에 자식처럼 책임감 있게 키워야 한다. 인간보다 현저히 짧은 수명 시간을 가진 반려동물은 이 짧은 생의 시간 동안 주인에게 변치 않는 사랑과 연대감을 주고 살아간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런 존재는 흔치 않다. 모든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아끼고 함께 걷는 삶이라면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의 자격도 갖추어야 한다. 이내 나는 그러했을까 싶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생이 얼마 되지 않았음을 직감해서인지 근간의 유키는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눈물흘림증이라고도 불리는 유루증이 의심된다. 유키의 눈물은 장시간 눈 밑 털에 젖어 있어 정성껏 닦아도 잘 지워지지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별을 전제로 관계가 시작된다. 상호관계의 끝자락이 평온한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애절하지만 함께 한 시간을 오롯이 보듬고 오늘도 유키의 눈물을 닦아 준다. 

‘울지 마, 유키, 고맙고 사랑한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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