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설치미술가 치하루 시오타가 개인전 '인 메모리(In Memory)'로 한국을 찾았다. 지난 2020년 '비트윈 어스(Between Us)' 개인전 이후 2년 만이다.
이번 전시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계기로 죽음을 고찰해온 치하루 시오타는 실을 활용해 인간의 존재를 설명한다.
"실은 엉키고, 얽히고, 끊어지고, 풀린다. 이 실들은 인간관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끊임없이 나의 내면을 반영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인간관계와 닮았다고 말한다. 혈관처럼 이어진 실의 무리는 분명 유기적인 사회 공동체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 유독 주목할 만한 작업이 있다. 치하루 시오타를 대표하는 연작, 대형 설치 작업이다. 그는 가는 실을 엮어 거대한 공간을 재구성해왔다. 이번에 선보인 설치 작업은 한강 소설 '흰(2017)'에 영향받은 작품으로 '흰' 역시 하얀색 사물에 삶과 죽음을 연계하는 소설이다.
이 바다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중에 떠 있는 실과 종이가 너른 하늘을 재현한다. 바다를 가르는 배 위에 우뚝 선 드레스는 인간처럼 보인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기억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큰 배 위에 얹힌 옷의 외피와 같이, 우리는 기억의 바다에서 영원히 방황하고 있다."
엉켜 있는 실은 인간의 기억을 의미한다. 치하루가 실로 엮은 세계를 거닐며 관객은 저마다 기억의 바다를 헤엄친다. 작가가 그랬듯이 관객도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작가의 배는 이내 우리의 배가 되고, 그의 바다는 기억을 간직하는 이의 바다가 되고 만다.
치하루 시오타는 197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현대미술 작가다. 일상적 사물과 기억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을 던져 왔다.
전 세계를 무대로 여러 유수 전시기관에서 작업을 선보여 왔으며,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일본관 대표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0년에는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다음 달 21일까지 열린다.
글·사진 박하은 대학생 인턴기자 tina@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