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는 작년까지 목줄을 한 채로 마당에서 살았다. 마음 같아서는 목줄 없이 집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싶었지만 집에 담장도 없고 마을 분들이 덩치 큰 가로를 무서워해서 그러지 못했다. 마당에 묶여있는 가로를 보고도 무서워서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목줄 한 가로를 보면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작년에 주변에 인가가 없는 산속으로 집을 옮기면서 마침내 가로의 목줄을 풀고 실내로 들였다. 지금은 우리 부부가 밥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에 가로도 같이 산다.
가로를 처음 집 안으로 들였을 때는 불편한 점도 있었다. 마침 가로가 털갈이할 때라 온 집안에 가로 몸에서 빠진 털 뭉텅이들이 돌아다녔다. 또한 가로는 대소변을 밖에서 보기 때문에 수시로 집 안팎을 들락거리면서 발에 흙 같은 것들을 묻히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조금만 실내가 더럽혀져도 청소기 돌리느라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도 그런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고 가로 몸도 예전처럼 험하게 더러워지지는 않았다.
가로 입장에서도 말귀 못 알아듣는 인간들을 상대하느라 불편했을 수도 있다. 대소변이 마려워 밖에 나가자고 하면 “애가 왜 낑낑대지?”라고 뜬금없는 표정을 짓는 인간들을 보면서 답답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엄마라는 사람은 애를 키워봐서 몸짓까지 섞어서 몇 번 말하면 눈치를 채는데 아빠라는 인간은 둔해서 영 말귀를 못 알아듣더라”라고 생각했을 법 하다.
가로는 자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침대 곁으로 와서 내 귀에 대고 숨을 심하게 할딱거린다. 처음엔 “얘가 어디가 아픈가?”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가로는 새벽 한 시고 두 시고 제 기분 내킬 때 아무 때나 나를 깨운다.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한두 번 나가다 보니 나름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깊은 밤에 밖으로 나가면 낮에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함이 있다. 가로가 볼일을 보는 동안 나는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조용히 앉아 하늘의 별을 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우두커니 앉아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어젯밤에는 의자에 앉아 별구경을 한참 했는데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라 하늘이 깨끗해 별이 유난히도 밝고 많았다. 며칠 전에는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우연히 내 옆으로 왔다가 내가 돌아보자 놀라서 달아났다. 고요하던 주변이 고라니의 놀란 발걸음 소리로 어수선해졌다.
요즘 가로가 매우 아프다. 작년에 젖 부위에 조그만 종양이 생겨 동물병원에 갔었다. 늙은 개라 수술보다 항생제 투여를 권하기에 그렇게 해왔다. 다행히 그동안은 종양이 커지지 않고 잘 관리되고 있었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그 종양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하고 겨드랑이 부위에도 새로운 종양이 생겼다. 아픈 부위를 사진을 찍어 수의사에게 보냈더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가로 상태가 점점 나빠지더니 며칠 전부터는 뒷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가는지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한다. 어제까지는 내가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면 스스로 걸어 나가 대소변은 봤다. 그런데 오늘은 서서 대소변 보는 것도 힘들어 한다. 배도 점점 불러오고.
평소 같으면 추석 때 명절 쇠러 어머니와 아이들이 사는 서울에 가지만 이번 추석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도 서울에 오지 말고 가로 맛있는 거 많이 해주라고 하신다. 웬만하면 서울에 가서 서울 식구들과 작별 인사라도 시키고 싶은데 가로가 긴 여행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차를 타고 서울 가자면 그렇게 좋아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앞서가던 놈인데.
오늘 아침에 아내와 함께 가로를 안장할 장소를 마련했다. 살아있는 식구들이 잘 보이고 볕이 잘 드는 곳이다. 가로가 먼저 가면 새벽에 누가 나를 깨워줄까.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니버시티 오브 펜실베니아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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