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 라이크’라는 단어가 있다. 엔씨소프트(엔씨)를 대표하는 게임인 ‘리니지’의 특징과 시스템을 모방한 게임들을 일컫는 말이다. 공통적으로 이용자간 스펙 경쟁을 강조하고, 캐릭터의 능력치를 현금으로 판매하는 등 ‘P2W(돈을 쓸수록 강해지는 구조)’ 성격이 짙다. 수익성이 확실히 보장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출시된 국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상당수가 리니지와 같은 색을 띠고 있다. 급기야는 원류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까지 이르렀다.
엔씨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카카오게임즈와 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소장(민사)을 접수했다. 양사가 개발하고 출시한 ‘아키에이지 워’가 ‘리니지2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다수 모방했다는 이유에서다. 엔씨 측은 “아키에이지 워가 장르적 유사성을 벗어나 엔씨소프트의 지식재산권(IP)을 무단 도용하고 표절한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사내외 전문가들의 분석과 논의를 거쳐 당사의 IP 보호를 위한 소송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키에이지 워는 지난달 21일 출시된 MMORPG다. 출시 후 애플 앱스토어 최대 매출 순위 1위, 구글 플레이 최대 매출 순위 2위를 달성하며 초반 흥행 몰이에 성공했다. 아키에이지 워를 개발한 엑스엘게임즈의 수장이 ‘리니지의 아버지’로 불리는 송재경 대표라는 점은 공교롭다. 송 대표는 김택진 엔씨 대표와 ‘리니지’를 만든 국내 게임업계 1세대 개발자다.
시스템⋅UI 판박이… 법원은 어떻게 볼까
엔씨는 아키에이지 워가 크게는 리니지2M 고유의 시스템과 핵심 콘텐츠, 게임 유저 인터페이스(UI)를 표절했다고 보고 있다. 엔씨가 6일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아키에이지 워는 리니지2M의 ‘클래스’를 모방해 ‘직업’을 구성했다. 주무기·부무기 등 2종의 무기를 혼합해 사용하는 리니지2M의 고유한 시스템도 베꼈다. 희귀 등급까진 주무기만 사용 가능하고 영웅 등급부터 부무기가 존재하는 점 또한 동일하다. 이밖에 타겟 스캐닝과 퀵슬롯 등 전투 편의를 위한 시스템과 PvP(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PvE(플레이어 대 환경) 시스템 및 UI를 모방했다는 것이 엔씨의 주장이다.
엔씨는 “IP는 장기간의 연구개발(R&D)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기업의 핵심 자산”이라며 “이번 법적 대응은 엔씨의 IP 보호뿐 아니라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게임 콘텐츠 저작권 기준의 명확한 정립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문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업계는 리니지의 시스템이 한국 MMORPG 곳곳에 뿌리 내린 상황에서, 표절 시비를 가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최근 게임의 표현 방식에도 저작권이 있음을 인정한 판례가 나온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참고가 될 판례는 ‘팜히어로사가’를 만든 킹닷컴이 지난 2014년 ‘포레스트매니아’ 개발사 아보카도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및 부정경쟁행위 소송이다. 당시 대법원은 포레스트매니아가 팜히어로사가의 주요 구성 요소의 선택과 배열, 조합을 그대로 사용했다며 킹닷컴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3매치 퍼즐 게임이라는 장르의 유사성을 떠나, 표현 방식에 기존 게임과 구별되는 창작성이 있다면 저작권이 있음을 인정한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엔씨와 카카오게임즈가 법정 다툼에 돌입한다면, 이는 장기전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킹닷컴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기까지는 장장 5년이 소요됐다. 엔씨가 2021년 ‘리니지M’의 UI 배치와 수익 모델 등을 모방했다며 웹젠의 MMORPG ‘R2M’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저작물 인식 변화 계기 될 것… “코미디 같다”는 한탄도
업계는 이번 사태가 올바른 개발 문화를 정착할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표절 시비는 법원에서 가려지겠지만, 게임 저작물에 대한 인식과 기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다른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 넥슨과 아이언메이스의 소송 사례처럼 최근 게임 개발 단계에서 도덕적 해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저작권을 침해했다면 확실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론 게임업계의 무분별한 수익성 좇기가 빚은 촌극이라는 한탄도 있다. 이 관계자는 “되게 코미디 같다. 리니지와 굉장히 유사한 시스템을 구현한 게임들이 시장에 계속 나오지 않았나. 어느 순간 리니지와 판박이 수준의 게임들이 출시되며 수위를 올려오고 있었는데, 결국 여기까지 왔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어느 스트리머의 말처럼, 표절 시비를 예상 못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를 강행한 건 높은 수익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확률형 아이템과 같은 수익 모델에 의존하는 국내 게임업계의 현 주소”라고 지적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