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장안구 한 아파트에서 영아를 살해하고 냉장고에 보관한 혐의로 A씨가 긴급 체포됐다. 2018년 11월 넷째 딸과 2019년 11월 다섯째 아들의 시신이 냉장고에서 수년째 방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사건이 5년이 넘도록 적발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들이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아동’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와 같이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가 2000여명에 달한다고 보고,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점쳐지는 만큼, 출생신고가 누락되지 않도록 출생통보제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감사원 감사 결과 지난 2015년부터 작년까지 태어난 영유아 가운데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무적자’가 약 2236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1%인 23명을 추적했더니 아이들이 제도권 밖에서 소외·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지난 3월부터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에서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체계에 허점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의료기관에서 출산한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 사례가 있는지 조사했다.
감사원은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출생신고 전이라도 B형 간염 예방접종을 위해 7자리의 ‘임시 신생아 번호’가 부여된다는 점에 착안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아동이 필수 예방접종과 보육지원 등 복지에서 소외되거나 범죄 등 위기상황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확인 과정에서 영아 유기 의심 사례도 드러났다. 수원시 영아 살해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경남 창원에서는 2022년생 아이가 생후 76일께 영양결핍으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화성에선 2021년생 아이를 출산한 보호자가 ‘아이를 익명의 제3자에게 넘겼다’고 진술해 아동복지법 위반(유기) 혐의로 입건됐다.
이제서야 이들을 적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피해자가 말 그대로 서류상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에서 출산을 했지만, 이후 모친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아이들에겐 임시 신생아 번호만 있고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출생신고를 한 아동이 예방접종을 하지 않거나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경우 아동학대 의심 대상이 돼 조사를 진행한다”면서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영유아는 모친 정보가 없어 조사가 어렵다는 허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복지부는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위기아동 발굴을 위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에 임시 신생아 번호만 있는 아동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수원 영아 살해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론 ‘출생통보제’가 거론된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경우 출생신고에서 누락되지 않게 출생 사실이 지자체에 통보되는 제도다. 이 경우 모친이 직접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아닌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알리기 때문에 ‘유령 아동’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출생통보제는 신원 공개에 부담을 느끼는 등의 이유로 임신부를 병원 밖 출산으로 내몰 가능성이 열려 있어 ‘보호출산제’도 병행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호출산제는 산모가 일정한 상담을 거쳐 익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호출산제를 대표발의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병원 밖에서 출산하다가 아이를 낳다가 죽거나, 불법으로 아기를 유기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보호출산제를 통해 임신 갈등을 겪는 위기 여성이 건강을 지키고,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조속히 법안이 통과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22일 서울청사에서 영아살해 등 아동학대 대응 관련 브리핑을 통해 “수원시 영아 사망사건과 관련해 출생한 아동이 태어난 이후 우리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것에 대해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전수조사를 비롯해 아동 안전에 관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도입을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의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