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별세한 원로 변희봉은 ‘국민 배우’라는 칭호에 걸맞은 인물이었다. MBC 성우로 데뷔한 1965년부터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연기에 헌신하며 한국영화와 드라마에 다양한 얼굴을 새겼다.
유족과 연예계에 따르면 고인은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이날 오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2017년 췌장암이 진단돼 1년여간 치료에 집중해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최근 병이 재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드라마계는 비탄에 젖은 분위기다.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 개봉을 앞두고 이날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을 만난 배우 송강호는 “비통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 고인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송강호는 “선생님(변희봉)은 수많은 작품에서 명연기로 감탄을 주신 대배우”라고 돌아봤다. 고인이 생전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방송사 관계자는 “부고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1942년 6월 8일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나 1960년대 극단에서 활동하며 연기에 발을 들였다. 1966년 MBC 성우 공채 2기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이후 방송 드라마에 진출해 MBC ‘제1공화국’, ‘찬란한 여명’, ‘허준’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MBC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에선 유행어 “내 손안에 있소이다”를 남기며 제2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을 받았다. 업계에선 “악역이나 사극 등 대중적이지 않은 캐릭터 혹은 장르에서도 연기력을 공력 삼아 인정받은 배우”(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 데뷔작은 2000년 개봉한 ‘플란다스의 개’(감독 봉준호)다. 봉 감독 삼고초려로 이 작품에 출연한 고인은 이후로도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 등에 출연해 봉 감독 페르소나로 불렸다. 특히 ‘괴물’에선 주인공 아버지 박희봉 역을 맡아 가족을 향한 애틋한 부성애와 비장한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줘 호평 받았다. 고인은 이 작품으로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제9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연기상, 제51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20년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권위의 정부 포상인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고인은 젊은 시절부터 작품 속 캐릭터를 현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로 표현해오셨다. 캐릭터 분석이나 다른 배우들과의 조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연기하신 분”이라며 “고인은 한국 현대사를 같이 걸어온 분이라는 점에서 ‘국민 배우’라는 애칭을 받아왔다”고 짚었다. 정덕현 평론가도 “고인은 봉 감독과 작업하며 전성기를 맞았지만, 그 전에도 드라마 대사를 유행시킨 연기파 배우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0일 낮 12시30분이다.
이은호 김예슬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