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다시 톱스타로… ‘거미집’ 오정세 [쿠키인터뷰]

11년 만에 다시 톱스타로… ‘거미집’ 오정세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10-02 06:00:31
배우 오정세. 바른손이앤에이 

2012년 어느 날, 배우 오정세는 도통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에 부딪혔다. ‘오정세가 톱스타 역을 어떻게 해?’ 제작사와 투자사에서 쏟아지는 질문에 감독도, 오정세도 아무 답을 할 수 없었단다. 그런 고난을 거쳐 나온 영화가 그의 인생작으로 꼽히는 ‘남자사용설명서’(감독 이원석). 그로부터 꼬박 11년이 지나 또 한 번 톱스타 역과 만났다. 추석 연휴 전날 개봉한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을 통해서다.

“‘(오)정세야, 네 매력이 뭐니?’라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히더라니까요.” 지난달 21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가 소탈하게 말했다. ‘거미집’에서 톱 배우 호세 역을 연기한 그는 11년 전과 동일한 질문을 요즘 다시 받고 있단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 말을 잇던 오정세는 “11년 전 이원석 감독님의 물음에도, 이번 영화를 본 분들이 물어볼 때도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지운 감독은 답을 줬냐고 묻자 그다운 답이 돌아왔다. “번복하면 어떡하려고 제가 감히 그런 질문을…. 깜빡하고 캐스팅하신 것일 수도 있잖아요. 조용히 있어야죠.” 진지하지만 웃긴 답에 현장은 금세 웃음으로 가득 찼다.

본인은 이유를 모른다고 했지만, 오정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등장할 때마다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다. 호세는 그릇된 순정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극 중 유림(정수정)과 불륜 관계인 그는 촬영이 이어질수록 여러 상황에 맞부딪힌다. 대부분 웃음이 그가 나온 장면에서 터질 정도다. 사전 시사 때부터 반응이 뜨겁지만, 정작 당사자는 겸허한 반응을 보였다. “뒤풀이 자리에서 배우들 모두가 고르게 호평을 받아서 뿌듯했어요. 저도 그랬냐고요? ‘이 배우 좋더라. 아, 너도 좋았지!’라던데요? 순전히 덤으로 칭찬받은 거죠. 하하.”

‘거미집’에서 호세 역을 연기한 배우 오정세. 바른손이앤에이 

오정세는 ‘거미집’을 “감독이 걸작을 만드는 과정에서 걸림돌을 마주하는 이야기”라고 소개하며 “호세도 걸림돌 중 하나”라고 했다. 유부남이지만 애인이 있는 사람. 오정세는 이 같은 호세를 단순히 나쁜 사람이나 걸작의 방해꾼으로 그리기보다는 지켜보고 싶게 하는 인물로 그리려 했단다. 그 결과 꼴불견처럼 행동해도 왠지 모른 귀여움을 풍기는 호세가 탄생했다. 오정세는 “호세가 나올 때마다 객석에서 ‘으이그’라는 반응이 나오길 바랐다”고 했다.

“호세는 두 여자를 욕심내는 나쁜 사람이에요. 하지만 크게 응징당하는 것보다는 자잘하게 혼나는 순간이 잔잔히 나오길 원했어요. 임수정·정수정 배우가 다투는 장면에 그런 모습이 담겼어요. 영화 속 영화에서 두 수정이 몸싸움을 벌이면서 죽어있는 호세가 밀쳐져 주변 사물에 한 대 맞거든요. 호세가 죽었더라도 조금은 혼나야 한다고 생각해서 감독님께 직접 제안했어요. 그래야 관객도 호세에게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았을까요? 1초 정도뿐이어도 제겐 중요했어요. 영화적으로 아주 작은, 한 방울의 혼남이 필요했거든요.”

‘거미집’ 오정세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오정세가 마음껏 뛰놀 수 있던 건 “그래도 되던 현장이어서”다. 그는 “호세로만 서있으면 모든 게 가능했다”고 돌아봤다. 김지운 감독이 힘을 보탠 데다 동료 배우들의 열정과 호흡이 워낙 좋았단다. 말투, 음성, 대사 사이 호흡, 말버릇에 더해 주어진 동선에서 여러 디테일을 첨가하다 보니 지금의 호세가 탄생했다. “재촬영 시작 때 분장실에서 나오는 호세의 걸음걸이를 격투기 선수 코너 맥그리거가 링으로 나올 때처럼 해봤어요. 걷는 것만으로도 ‘내가 다 이겨줄게, 지켜봐’라고 말하는 듯한 사람이거든요. 이런 것들이 실현 가능해서 기뻤어요.”

오정세는 ‘거미집’을 “긴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영화 ‘하울링’(감독 유하)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감독 김지운)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셔 송강호, 김지운 감독과 만남이 불발됐던 그는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두 사람과 ‘거미집’으로 만났다. ‘우아한 세계’(감독 한재림) 촬영 당시 송강호는 단역이던 오정세를 보고 ‘저 친구 어디서 데려왔냐’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오정세는 “출연분은 편집됐어도 그 말은 내 자산이었다”며 뭉클해했다. 그는 지금도 즐거운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오정세는 “촬영장에 갈 때마다 여행 가는 기분”이라면서 “스트레스마저도 즐겁다. 성공이라는 뚜렷한 기준점 없이 좋거나, 덜 좋거나 혹은 더 좋은 게 내 연기 인생”이라며 활짝 웃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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