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 26일 올해 최고 흥행 기록을 썼다. 지난 24일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지 이틀 만에 이룬 쾌거다. 한국 영화로는 역대 22번째 1000만 영화다. 영화계에선 “포스트 코로나19 이후 단일 IP(지식재산권)로 이룬 첫 1000만이라 의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 ‘범죄도시3’(감독 이상용) 등 시리즈물이 강세였던 흐름을 벗어나 완성도로 승부를 봤다는 뜻이다. 올해 흥행이 저조했던 한국영화가 ‘서울의 봄’으로 반등 계기를 마련하리라는 기대도 피어난다.
“대신 혼내드려요” 넷플릭스는 왜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12일 벌어진 군사반란에 허구를 더한 영화다. 배우 황정민이 전두환을 각색한 반란군 수괴 전두광을 연기했다. 팬들 사이에서 “황정민이 전두환을 삼켰다”거나 “우리 오빠 몸에서 썩 꺼져라, 사악한 독재자야”란 반응이 나올 만큼 실감 나는 열연이었다. 덕분에 온라인에선 황정민을 통한 ‘대리 복수’가 인기였다. 전두광을 보며 쌓인 분노를 ‘황정민 고생 영화’를 보며 푼다는 관객들이 생겼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이런 흐름을 타고 이달 초 “대신 혼내드려요”라며 드라마 ‘수리남’ 속 영상을 편집해 SNS에 올렸다. 황정민이 연기한 전요환이 매 맞고 쫓기는 장면을 묶은 영상이었다. 2년 전 개봉한 영화 ‘인질’(감독 필감성)도 다시 관객을 만났다. 제작사 외유내강과 투자배급사 뉴, 멀티플렉스 CGV가 도원결의한 결과였다. 뉴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관객들에게 극장을 찾는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고자 진행한 이벤트”라며 “‘서울의 봄’ 흥행과 ‘인질’ 재상영이 무대인사 등에서 언급돼 마치 페어(짝) 영화처럼 보였던 재밌는 현상”이라고 돌아봤다.
무대인사 개근한 정우성, 생애 첫 1000만
반란군을 진압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의 배우 정우성은 데뷔 30여년 만에 첫 1000만 영화를 갖게 됐다. 정우성과 영화 ‘비트’, ‘태양은 없다’ 등 다섯 작품을 함께 한 김성수 감독도 1000만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우성은 영화가 개봉한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26일까지 무대인사 217회에 모두 참석했다. 28일 예정된 특별 무대인사 15회를 포함하면 총 232회 관객을 만나는 셈이다. 연예계에선 “주연 배우라고 해도 이 정도 일정을 소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감탄이 나온다. 지난 17일 광주 광천동 CGV광주터미널점에서 열린 무대인사에선 “‘서울의 봄’이 광주에 오길 43년간 기다렸다”는 손팻말이 황정민을 울렸다. 전두환 독재에 항거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린 문구였다. 애초 황정민은 영화 ‘호프’(감독 나홍진) 촬영 때문에 이날 무대인사에 참석하기 어려웠으나 일정을 조율해 깜짝 등장했다.
흥행 주역 2030…“교과서로만 보던 현대사를 현실로 소환”
‘서울의 봄’ 흥행돌풍을 주도한 건 12·12 군사반란을 교과서로만 접한 2030세대다. CGV에 따르면 개봉 첫 주(11월 22~26일) 2030 관람객 비율이 이미 60%에 육박했다(30대 29.4%, 20대 28.5%). 25일 기준으로도 30대 관객이 28.5%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20대 비율은 24.3%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역사 교과서에서 한 줄 정도로만 접했을 12·12 군사반란의 숨은 이야기가 이들 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역사인 만큼 ‘분노의 공감대’가 쌓이는 것”이라고 짚었다. MBC 온은 “‘서울의 봄’을 예·복습하기 좋은 작품”이라며 드라마 ‘제5공화국’을 이달 초부터 재방영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영화관계자는 “흔히 ‘20대는 역사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서울의 봄’이 보여줬다”면서 “교과서에서도 짧게 소개되던 사건을 현실로 소환해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도 ‘서울의 봄’의 의의”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