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맞서는 연대의 힘…‘바로, 지금, 여기’ [쿡리뷰]

기후위기에 맞서는 연대의 힘…‘바로, 지금, 여기’ [쿡리뷰]

기사승인 2024-04-03 13:00:02
다큐멘터리 영화 ‘바로, 지금, 여기’ 스틸컷. 영화사 공생공락 

2022년 7월 서울 돈의동 쪽방촌은 유난히 더웠다. 폭염이 날로 심각해지니 주민 모두는 영 맥을 못 췄다. 털털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한 대로는 버티기 힘든 여름. 작열하는 태양은 자비가 없다. 쪽방 거주 8년 차인 82세 조분돌 할머니는 물 적신 수건을 옷 위에 올려 무기력하게 누웠다. “이래야 조금 시원해. 작년보다 더 더워, 올해가.”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던 적나라한 현실을 스크린에 옮기자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기후 위기가 현실을 스멀스멀 덮쳐오는 모습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바로, 지금, 여기’(감독 남태제·문정현·김진열)는 막을 올린다.

‘바로, 지금, 여기’는 1장 ‘돈의동의 여름’을 시작으로 2장 ‘열음지기’, 3장 ‘마주 보다’로 이어진다. 기후 위기로 인한 폭염 속 쪽방촌 주민들의 삶과 주거권을 들여다보고, 요동치는 기후 속 여성 농민이 매달리고 있는 생태적 농사에 주목한다. 말미에는 청년 기후활동가와 노년 활동가가 펼치는 탈(脫) 석탄 기후 행동을 다루며 이야기를 확장한다.

시작은 날것에 가깝다. 더위에 시달리느라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없는 건 기본이요, 취하기라도 해야 잠에 겨우 들 수 있는 열대야에 쪽방촌은 나날이 병든다. 찜통더위만이 문제는 아니다. 카메라는 폭염 속 방치된 쪽방촌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꼬집는다. 기후 변화로 인해 폭우와 더위가 몰아치자 1년 사이 거주민 8명이 사망했을 정도다. 평등한 생존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고된 마음을 치유받는다.

‘바로, 지금, 여기’ 스틸컷. 영화사 공생공락
‘바로, 지금, 여기’ 스틸컷. 영화사 공생공락

돈의동의 여름을 비추던 카메라는 경북 상주 한 농촌으로 향한다. 농촌은 기후 위기를 직격타로 맞았다. 파릇파릇하던 논바닥은 갈라진 지 오래다. 가뭄과 냉해 속 농작물이 성할 리 없다. 여성 농민들은 토종씨앗에 주목한다. 유전자 변형을 거치지 않아 기후 변화에 강해서다. 기업에 맞서고자 하는 의지도 강하다. 농민들은 농업용 방제드론부터 스마트 농기계를 활용한 자율작업, 스마트팝 단지를 홍보하는 기업들을 경계한다. 농민들은 생업을 노리는 수많은 위협에 굴하지 않고 생태농사에 집중한다.

열악한 현실들을 꼬집던 영화는 환경 문제를 주 무대로 올린다.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으려는 대기업을 저지하려다 송사에 휘말린 20대 청년 운동가 강은빈씨와 손녀가 살아갈 세상을 걱정하며 기후운동단체 활동을 시작한 60대 민윤혜경씨가 주인공이다. “기후 위기 대응은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청년과 “하나뿐인 지구 이대로 물려줄 수 없다”는 노년이 만나자 행동력은 더욱 강해진다. 

기후 변화가 재난으로까지 치달은 상황에도 모두에게 힘을 주는 건 연대의 가치다. 1장에선 쪽방촌 거주민이 서로를 돌보며 살아남는 이야기를, 2장에서는 국경을 초월한 여성 농민의 화합을 부각한다. 3장은 세대 간 통합을 다룬다. 총 세 편의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며 현황과 현실 세태를 짚고 행동으로까지 흐름을 자연스레 이어간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한 고민이 곳곳에 담겼다. 빙하가 녹는다거나 남태평양 섬이 잠긴다는 등 해외에 편중했던 기존 의제와 달리 국내 기후 문제에 주목한 만큼 극이 바라본 현실은 더욱 따갑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된다.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제작지원작. 공동체 상영 예정. 총 상영시간 131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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