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 휴진한다고, 당장 이번 주에 잡힌 외래가 연기됐다. 희귀질환이라 2차 병원에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고, 대학병원에선 파업 때문에 진료를 못 본다고 하니…. 희귀질환자들은 어디로 가라는 건지 모르겠다.” (CRPS 환자 조재희씨, 31세)
“상급종합병원에서 주 1회 수술과 외래진료를 멈추는 건, 암 환자들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
서울 주요 대형병원들의 ‘주 1회’ 휴진을 앞두고 환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70여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현장의 마지막 보루였던 의대 교수들마저 진료 일정을 축소하며 의료 공백이 커질 전망이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당장 이날부터,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금요일인 내달 3일에 각각 외래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겠다고 예고했다. 고려대 안암·구로·안산병원 등 고려대의료원 산하 교수들도 30일부터 주 1회 휴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들은 진료 차질이 빚어질까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정 신체부위에 심각한 고통을 느끼는 희귀질환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는 조재희(31)씨는 “통증이 갑자기 악화되면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그간 급하게라도 외래를 잡아 진통제를 처방받곤 했는데, 외래진료가 열리지 않는 날 아프면 집에서 고통을 삼키는 방법밖엔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공의 이탈로 조씨의 병원 방문 횟수는 월 3회에서 주 2~3회로 늘어났다. 여러 진료과 교수들이 전공의들의 일을 도맡으면서 외래 진료 일정을 잡는 일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조씨는 합병증을 앓고 있어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뿐 아니라 혈액외과, 혈액내과, 피부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봐야 한다. 거동할 때마다 조씨가 느끼는 칼로 베는 듯한 고통이 더 커진 것이다.
조씨는 “집 밖으로 나올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유발된다. 그간 교수님들이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일 수 있게 배려해 줬지만, 주 1회 휴진에 들어가면 병원 방문 횟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불안도 크고, 하루하루 지옥에서 사는 기분”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 역시 “환자들은 자포자기 심정이다. 2차 병원도 예약을 잡으려면 한두 달 걸릴 정도로 포화 상태라고 한다”라며 “주 4일로 근무 일정이 줄면, 환자들의 진료 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힘겨루기를 멈추고 의료공백 대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의료공백 장기화로 중증 환자들의 고통과 희생은 한계에 달했다. 5월이 되면 아마 의료공백이 아니라 진짜 의료대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와 의료기관이 환자들을 위해 대안을 내놓지 않고 이처럼 손 놓고 있는 건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의대 교수들의 주 1회 휴진이 정기화될 경우 이미 진료 축소로 경영난을 겪는 병원들의 재정적 타격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개별적으로 휴진하는 것이라 병원 측에서 얼마나 줄었는지 집계하긴 어렵다”면서도 “얼마나 참여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주 1회 휴진을 한다면 병원 경영상 어려움이 심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의료원 관계자도 “이번 주 들어 외래나 수술을 취소·연기한 사례가 거의 없어 그 전과 상황이 별로 달라지진 않았다”면서도 “지금도 경영상 타격이 엄청난데, 만약 정기적으로 하루 휴진에 나선다면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일단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를 추가 인력으로 파견하고, 집단행동 상황을 예의주시할 계획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9일 브리핑을 통해 “추가 인력 투입은 교수들이 현장을 비우게 되면 예상되는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30일이 예고된 휴진 날짜인데 현장 상황을 잘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