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비응급·경증 환자가 응급실에 가면 진료비의 9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할 전망이다.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위한 조치다. 현장 의료진들은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대책이라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당장의 응급실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응급실 비용을 실손보험에서 보전해주기 때문에 경증 환자 감소에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응급실 이용료를 올리면, 중증 환자의 치료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23일 ‘국민건강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고, 이달 30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경증·비응급 환자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나 권역외상센터, 전문응급의료센터 등을 내원했을 때 응급실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현행 50~60%에서 90%로 인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이 통과될 경우 단순 장염 환자가 응급실에 가면, 본인부담금이 상급종합병원은 10만원대 초반에서 20만원대 초반으로, 종합병원은 6만원대에서 10만원대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증 환자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를 막고, 중증 응급 환자를 적시에 치료해 응급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경증·비응급 환자와 중증 환자를 나누는 기준은 ‘KTAS(중증도 분류체계)’를 활용한다. KTAS 1단계는 심장마비, 무호흡 환자이며 2단계는 심근경색, 뇌출혈, 뇌경색 환자 등으로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반면 4단계는 38도 이상 발열을 동반한 장염, 폐렴 증상을 보인다. 5단계는 가벼운 감기나 두통, 장염, 설사, 열상이 나타난다. 4, 5단계는 일반적인 치료로 회복이 가능한 상태로 경증·비응급 환자가 해당한다.
정부가 응급실 본인부담금을 올리기로 한 건, 최근 경증·비응급 환자의 응급실 이용이 늘어나면서 중증 환자 진료가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복지부에 따르면 KTAS 4~5단계 환자는 지난 주 대비 1.7% 증가한 8541명에 달했다. 평시의 103.1% 수준이다. 이러한 탓에 응급실을 이용하는 환자 중 경증·비응급에 해당하는 경우가 약 42%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또 코로나19 감염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 가운데 95% 이상이 중등증 이하였다.
현장 의료진들은 이번 대책이 응급실 과밀화 해소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경증·비응급 환자에 대한 본인 부담 상향은 대한응급의학회가 해당 분야 전문가 학술단체로서 오랫동안 일관되게 주장해 온 사항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다만 분산 효과가 크진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응급실 진료비를 보험사에 청구해 본인부담률 조정에 따른 영향이 적기 때문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본인부담금을 올린다고 해도 경증 환자들이 응급실 이용을 줄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면서 “실손보험에서 응급실 비용을 대부분 보전해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응급실을 찾는 경증 환자의 1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없다”면서 “결국 자기부담금을 높이는 것은 환자와 의료기관에 책임을 떠넘기는 치사한 전술”이라고 짚었다.
경증인 줄 알았는데, 추후 중증으로 진행되는 사례도 있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소화불량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는데, 대동맥박리인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동맥박리는 대동맥이 늘어나 혈관 벽이 손상되는 질환으로, 찢어진 정도가 심하면 병원 도착 전 사망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응급 현장에선 경증과 중증을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가 많다”면서 “이를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