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열쇠 쥔 국민연금…ESG 기준 적용 선제적 공표 필요” [쿠키인터뷰]

“고려아연 열쇠 쥔 국민연금…ESG 기준 적용 선제적 공표 필요” [쿠키인터뷰]

- 정용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인터뷰
- “위탁운용사 ESG 원칙 준수, 수년 전부터 지적돼도 안 지켜져”
- “MBK 개입은 적대적 M&A, 국민연금이 국민 입장서 판단해야”

기사승인 2024-11-25 06:00:10
정용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유희태 기자 

“국민의 돈으로 주식·채권에 대체투자를 하는 위탁운용사를 선정하는 데 있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원칙을 적용해야 하며,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서도 ESG 원칙을 고려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국민의 소중한 재산이니까요.”

현재 주식시장 내 각종 경영권 분쟁 및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 현황에 대한 정용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의 의견이다. 2012년 국민연금바로세우기국민행동으로 시작해 12년째 노동시민사회단체로서 국민연금공단의 역할을 감시하고 있는 그는, 최근 국내외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이 그만큼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 위원장은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기금이 올 상반기 기준 1200조원가량, GDP의 5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면서 “국민연금을 ‘연못 속의 고래’라고 표현할 정도로 금융시장이나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상황에서 공적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데 특히 연금 고갈 우려 등 사회적 문제점이 제기되는 이때, 미흡한 부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일례로 최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의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참여를 이미 ‘적대적 M&A’로 보고 있었다.

정 위원장은 “국민연금공단이 기금 대체투자를 위해 올 상반기 1조55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 등 위탁운용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ESG 원칙을 평가항목에 적용하지 않았고, 여기서 MBK 등이 선정됐다는 것은 이미 지난 국정감사 등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라며 “이러한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자본이 현재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으로 연결됐다는 점에 대해 국민들은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애초에 과거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에서 ESG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라고 우리 시민단체들이 요청도 했고 국회에서 기자회견도 진행했으나,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행태가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또 ESG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대체투자 위탁운용사 선정도 문제지만, MBK 등 사모펀드는 기본적으로 경영권 인수와 추후 매각을 통한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특히 국가기간산업을 영위하는 두 기업의 분쟁에 개입한 것 자체를 저는 적대적 M&A 시도로 보고 있다”면서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해 고강도 구조조정을 하고도 손실을 내고 있고, 2013년 ING생명(現 신한라이프)을 인수해 재매각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었던 점 등 과거 사례를 보면 개인적으론 MBK가 ESG에 충실하겠다거나 향후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식의 공약은 신뢰가 가지 않고, 이미 환경오염 등 여러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영풍과 손잡은 것 자체가 ESG의 E(environment)를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 위원장은 이어 “사실 영풍과 고려아연은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를 이어오면서 거버넌스 측면에서 보면 꽤 괜찮은 모델이었던 만큼, 현재 발생한 갈등은 서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과연 적대적 M&A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고, 또 이를 한다 하더라도 국민연금 위탁운용사가 개입해서 국민의 돈으로 참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영풍·MBK 연합의 지분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및 고려아연 측 우호 지분의 차이는 5%p 남짓이다. 이를 토대로 영풍·MBK 연합은 이르면 내달 또는 내년 1월 안에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이사회 교체를 시도할 계획이다. 이때 고려아연 지분 7.49%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이 ‘캐스팅보트(결정권)’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정 위원장은 “결국 공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넘어온 상황인데, 위원회가 이러한 적대적 M&A 시도 등 관점에 있어 사실상 국민의 돈이 사용되도록 MBK 측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면서 “결국 국민연금공단은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도 ESG 기준을 적용해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이 부분에 대해 선제적으로 판단을 해서 적극적으로 입장을 개진하리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국민연금 대체투자에 대한 ESG 원칙 적용 외에도 정 위원장은 연금개혁 등 미래 세대를 고려한 단계적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는 제언도 내놓았다. 현재 정부는 ‘더 내고 더 받는다’는 명목 하에 △보험료 13%·소득대체율 42% 인상 △출생연도별 차등 보험료 △자동조정장치(가입자수와 기대여명에 따라 연금 인상액 조정) 등 대안을 내놓은 상태다.

정 위원장은 “보험료·소득대체율을 인상하면 연금 고갈 시기를 16년가량 지연할 수 있고, 자동조정장치를 통해 또 16년을 지연해 총 약 32년 정도의 고갈 시기를 늦춤으로써 연금 고갈에 대한 논쟁은 줄어들 수 있지만, 여전히 노인 빈곤율 등 근본적인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면서 “또, 현실적으로 청년들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게 아니라 올리는 속도를 조절해주는 것뿐이기 때문에 향후 개혁에서 또다시 진통을 겪을 위험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당장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등 회의를 통해 보험료·소득대체율 인상과 관련해 여야가 빠른 합의를 하고, 나머지 부분은 이후에 신속하게 단계적으로 논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시장 충격을 줄여야 할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연금개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세대가 청년과 미래 세대인 만큼 그들의 노후도 우리가 고려해 장기적이면서도 탄탄한 정책을 수립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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