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밤’ 우리는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취재진담]

‘계엄의 밤’ 우리는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취재진담]

기사승인 2024-12-10 06:00:05
지난 3일 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헬기가 국회 내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임현범 기자

“비상계엄령인데 국회를 가겠다고? 어쩌려고 그래”


비상계엄령 선포 소식에 집에서 뛰어나가려 하자 어머니가 내 팔을 붙들었다. 어머니의 걱정하는 표정과 우려가 담긴 목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취재를 위해 현장에 가야 한다고 하자 아버지는 아무 표정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우리 가족의 평화는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3일 밤 11시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 됐다. 평온했던 국회는 경찰과 버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계엄 소식에 뛰어나온 시민들은 당장 비키라며 경찰과 승강이를 벌였다. 자정쯤 하늘에서는 헬기가 날아와 국회 운동장에 착륙하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는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 있게 국회 본관에 있는 모든 집기를 각 입구에 세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1분 1초라도 시간을 끌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취재진들은 계엄군의 등장에도 이 사실을 밖으로 알려야 한다며 멈추지 않고 촬영과 취재를 이어나갔다. 

고함과 고성,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인파에 밀려 발목이나 손목 등을 다치는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군인들과 대치하던 이들의 눈빛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국회 관계자들은 소화기를 비롯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하면서 마지막 고지인 본회의장을 둘러싸고 버텼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국회를 지켜달라는 메시지를 시민에게 전했다. 60대의 국회의장은 국회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담을 넘었고, 수많은 국회의원이 입법부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여당의 불참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18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본회의장에 들어왔다. ‘비상식적이고 위헌적은 계엄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동참했다.

국회 관계자들의 격한 항전에도 계엄군은 적극 공격하지 않았다. 몸싸움 중에도 양손을 위로 올리거나 비키는 등 충돌을 최대한 회피했다. 과격하게 밀쳐진 사람을 붙들고 끌어안아 토닥이기도 했다. 계엄군의 눈은 흔들렸다. 위헌적인 계엄 명령과 자신의 양심 앞에 이들은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군사전문가들은 당일 파견된 특수부대가 작정하고 본회의장을 점거하려고 했다면 길어야 20분 이내에 모든 상황이 종료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군의 판단에 큰 유혈사태 없이 비상계엄이 마무리됐다. 국회에서 비상계엄을 해제하자 대통령의 발표가 없었음에도 계엄군은 즉시 철수절차를 진행했다.

시민들은 빠져나오는 계엄군을 향해 “적극 대응하지 않아서 고맙다. 시민들을 다치지 않게 해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일부 병력이 갈 길을 잃자 시민들이 방향을 안내하기도 했다. 계엄군들은 시민들의 반응에 짧게 고개를 숙였다.

시민들은 계엄령이 해제돼 국회가 안전해지는 그 순간까지 국회 주변에서 추위를 견디면서 함께했다. 45년 만에 국민에게 총구를 겨눈 계엄령은 6시간 만에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과 국회의원, 당직자, 언론, 군인의 손으로 해제됐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평온을 깨고, 민주주의에 칼을 겨눈 내란 피의자를 탄핵할 시간이다.
임현범 기자
limhb90@kukinews.com
임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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