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이 해제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 식사 자리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의 일성이다. 대다수의 엔터업계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분위기다. 괜한 ‘불똥’이 튈까 걱정하는 마음 반, 특정 정파성 낙인이 찍힐까 우려하는 마음 반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반듯한 이미지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임영웅이 촉발했다. 계엄과 관련해 누구보다 빨리 입장을 밝힌 대중문화예술인 중 한 명은 이승환이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지난 7일 탄핵 표결 당일 “우리 시월이 생일 축하해”라는 문구와 함께 반려견 사진을 올린 임영웅이 독차지했다. 이유는 딱 하나, 해당 게시물로 인해 시작된 ‘DM(다이렉트 메시지)’에서 “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라고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목소리 내주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정말 무신경하”다는 메시지에 대한 답변이었다.
대중문화예술은 기본적으로 ‘호불호’의 장르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 영역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서로 다름의 미학을 펼치는 영역이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사회 문제와 정치의 영역도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차이를 인정하고,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99%의 ‘서로 다름의 영역’ 밖에 1%의 ‘맞고 틀림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게 바로 지난 3일 대한민국을 45년 전으로 후퇴시킨 위법·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 수괴’ 혐의로 수사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1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과 법률을 모두 위반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비상계엄과 관련한 내용을 사전에 전달받지 못한 것은 물론, 계엄 선포 이후 한국 정부로부터 한동안 ‘연락 두절’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또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심각한 오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비상계엄 선포 전에도 있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거리로 나가 시민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여러 차례 개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그러나 3일 밤, TV를 통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마주한 시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국회로 쏟아져 나왔다. 군사 독재 암흑기를 지나 시민들의 피로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비상계엄과 5·18의 상흔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계엄 선포는 가볍게 치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당당히 선정된 2024년에 비상계엄 선포를 다시 목도할 거라고 예상한 시민들은 거의 없었다. 군사 독재 시절, 비상계엄이 난무하는 세월을 지나온 세대들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될까봐 “무서웠다”는 본능적인 반응들을 쏟아냈다.
문화·예술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힘’이다. 임영웅이 국민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 또한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며 위안을 받았고 감동을 느꼈다.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면, 내면에 꼭꼭 숨겨두었던 아픔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문제의 본질은 정치에 대한 개인의 견해와 편 가르기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고 죽임을 당했던 우리나라의 현대사,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세대들이 여전히 느끼는 고통과 슬픔,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지 여부다. 임영웅과 소속사 물고기뮤직 측은 논란이 시작되고 5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DM을 정말 임영웅이 보낸 게 맞는지 사실 확인부터 하는 게 먼저라는 의견도 나온다. 임영웅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건 큰 게 아니다. 그를 좋아하는 팬들이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시국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헤아리고 공감하는 것이면 족하다. 임영웅이 소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대중들 역시 불필요한 인신공격과 특정 정파성을 띈 비난을 멈추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