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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비상계엄사태 이후 정국 혼란이 3개월 가량 이어지고 있다. 시끄러운 정치권과 달리 정부 공무원 조직은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가 연초 시무식에서 국정 조기 안정을 위한 공직자들의 역할을 강조한 이후, 실무자인 과장급 인사를 비롯해 3급 이상 고위공직자단 인사도 이뤄지고 있다. 다만 과장급과 달리 실국장급은 이런 인사 움직임을 반기지 않는 눈치다.
22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월부터 부처별로 실국장급 인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번주에는 해양수산부(20일)와 농림축산식품부(21일)에서 국장급 전보 인사가 있었다.
실장급(1급) 승진의 경우 올 들어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과 고용노동부, 해양수산부에서 각각 한번씩 있었다. 최 권한대행이 속한 기획재정부는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질 않고 있다. 지난 1월 장관정책보좌관과 국유재산심의관 등 2명의 국장급 인사를 단행한 게 전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부처의 3급 이상 실국장급은 외부 파견인원을 포함해 65명(기재부 내부 42명) 정도다. 이 가운데 1급인 실장급은 7명이다. 승진이나 전보 등 실장급 인사는 아직 예정된 게 없다”면서 상반기 인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부 중앙부처에서 3급 이상 실국장급은 실무를 담당하는 과장급과 달리 고위공무원단으로 분류해 관리하는 국가기관의 주요 수뇌부다. 정부 정책을 결정하고 예산과 법령안을 작성·수정하는 등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다. 때문에 고위공무원단에 입성할 때도 보안상 중요한 인물로 분류해 국정원의 신원조사를 거친다.
이처럼 정부의 철저한 관리 속에 있지만, 실국장급의 신분은 하위 직급에 비해 불확실하다. 정책 결정에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치권에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정부부처의 실국장급 인사가 대규모로 교체되기도 한다. 9년여 만에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교체를 했던 문재인 정부와 보수 복귀를 이룬 윤석열 정부는 정권 초기 이전 정부의 정책을 주도했던 실국장들을 대규모 물갈이했다.
이런 이유로 올 들어 실국장급 인사 대상자 사이에서 부처 인사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 한 고위공무원은 “1급은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다. 인사를 급하게 내진 않을 것 같다”면서 “권한대행은 기재부를 잘 아니까 인사를 하려면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 정치가 어떻게 흘러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새판을 짜야 하니 지금 무리하게 할 것 같지 않다”고 예상했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조기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상항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정권 교체와 함께 자리를 물러나야 한다는 의미에서 ‘XX조’라는 자조섞인 한탄도 쏟아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공무원 A씨는 “정부가 바뀌면 내각 개편이 이어진다. 그러면 실국장급도 인사 변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1급 실장들은 최악의 경우 옷을 벗을 수도 있다. 최근 실국장으로 발령받은 사람들도 불안해하고 있다”며 씁쓸한 웃음을 남겼다.
세종=김태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