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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전북본부 데스크칼럼 <편집자시선>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현안들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고 격려할 것은 뜨겁게 격려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주변의 정치적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전라북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전북특별자치도가 요즘처럼 어수선한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특별자치도로 출범한 첫해부터 지역 이익을 둘러싼 기초자치단체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사분오열하는 모양새다. 전주·완주 행정구역 통합, 군산·김제·부안의 새만금 관할권 다툼, 제2혁신도시 조성, 전주~김제~광주 철도 신설 문제 등 ‘소지역주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1997년 이래 세 번 좌절됐던 완주·전주 통합은 전북특별자치도의회가 21일 ‘전북자치도 통합 시·군 상생발전 조례안’을 가결하면서 완주가 지역구인 윤수봉·권요안 전북도의원이 삭발을 단행했고, 반대위원회측은 김관영 지사의 사퇴를 요구하며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조례안은 통합 대상 지자체 중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가 큰 도시에 흡수될 것이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담은 것으로 행정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민 불이익을 방지하고,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북자치도는 이번 조례안이 특정 지역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도내 14개 시·군 전반에 적용될 일반 조례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하필 완주-전주 행정통합이 논의되는 와중에 조례를 마련해 저의를 의심케 한다.
문제는 완주·전주 행정통합 논의가 통합 효과와 부작용을 따지기보다 불필요한 감정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완주·전주 통합은 지난해 7월 정부에 서명부를 접수함으로써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완주군을 방문해 지역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었으나 통합 반대 측의 강경 시위와 감정적 대응으로 논의는 사라지고 혼선만 초래했다.
내년 개항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새만금 신항만의 운영을 싸고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군산시는 새만금 신항을 군산항의 부속항으로 통합 운영해야 한다는 ‘One-Port’를 주장하는 반면, 김제시는 독립적인 신규 무역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Two-Port’를 강조하고 있다.
새만금 신항 관할권 다툼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지역 갈등이 깊어지다 보니 새만금 신항만 개항과 운영에 실질적 권한을 가진 해양수산부는 무역항 지정 문제 등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국책사업인 새만금 신항만의 개항 시기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2026년 개항도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김관영 지사가 군산시청을 방문해 가진 도민과의 대화 중 새만금 신항만의 무역항 지정 문제를 두고 김영일 군산시의원과 고성으로 논쟁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벌어졌다. 김 지사가 뒤늦게 유감을 표명하고 갈등 수습에 나섰지만 연초 지역을 순회하는 도지사로서는 품위를 구긴 꼴이다.
신항만 관할권을 놓고도 첨예하게 다투는데 새만금특별지자체 결성은 먼 이야기다. 새만금특별지자체는 간척지 새만금과 인근 군산·김제·부안을 하나로 묶어 규모의 경제와 지역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3개 시·군이 사사건건 맞붙고 있어 지역 간 갈등만 고조되고 행정력마저 낭비하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제2혁신도시 유치를 놓고도 이견이다. 국토부가 공공기관 2차 이전 기본계획 수립 시기를 올 하반기로 연기하는 등 아직 방침을 세우지 못하고 있지만 전주, 완주, 익산, 남원 등 지역 정치권의 유치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이 와중에 김 지사는 연초 익산을 방문해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제2혁신도시 익산 조성 의지를 밝혀 불확실성이 큰 상황 속에서 도지사가 지역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북자치도가 지난해 정부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6~2035)에 반영을 건의한 전주~김제~광주를 잇는 신규 철도도 지역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 전주에서 김제까지 철도를 신설하고 김제에서 광주까지는 옛 철도를 활용해 연결한다는 계획인데 익산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익산은 전주~김제~광주 노선은 호남의 철도 관문인 익산역의 수요 감소와 지역 쇠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과거 전북혁신역 신설 사태와 같이 시․군 간 대립과 반목으로 이어져 지역사회 발전을 저해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들도 경제성이 부족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인데 전북자치도는 편의성을 제고하고 추가 수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변명했다. 전주~김제~광주 신설은 사업비가 1조 2400억원이나 들어간다.
전북 내부에서 주요 현안을 두고 격하게 대립하다 보니 중앙 정부에서는 지역 내부 갈등부터 봉합하라며 팔짱을 키고 관망하는 자세다. 지역 간 논란이 벌어진 곳에서 사업을 추진하면 예산을 투여해도 사업 진척이 없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논리다. 그 지역의 사업들은 당연히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도 전북지역 내 소지역주의를 격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치단체장 후보군이 본격적으로 지방선거 준비에 돌입하면서 지역의 이익을 확실하게 챙긴다는 인상을 심어 지역 유권자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행보가 갈등 격화에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 현안이 발생하면 공론의 장을 만들어 숙의해야 하는데 요즘은 전북자치도에는 논의도 없고, 중재자도 없고, 숙의 민주주의가 실종된 느낌이다. 광역자치단체인 전북자치도는 기초자치단체들의 이해관계 조정에 손을 놓고 있다. 중립적인 태도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지만 오히려 한 편의 입장을 동조하고 있는 모습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소지역주의’는 지역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발전을 지연시킬 뿐 아니라 주민 간의 반목만 키운다. 김 지사를 비롯해 국회의원, 지역 정치인들은 지역구 이익에 급급해 방관하지 말고 대승적 차원에서 중재와 조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