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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명분으로 가산금리를 포함한 대출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예금 금리는 내리고 있다.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가 커지면서 은행 이익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공시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이날 기준 대표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1년만기 기준)는 연 2.40∼3.10% 수준이다. KB국민은행은 전날부터 ‘KB 스타(Star) 정기예금’의 최고금리(만기 1년 기준·우대금리 포함)를 기존 연 3.00%에서 2.95%로 낮췄다. KB국민은행 내부 시계열 기록을 보면, 이 상품의 최고금리가 2%대였던 마지막 시점은 지난 2022년 7월10일이었다. 이후 3%대로 진입했다가 약 2년7개월 만에 다시 2%대로 복귀했다.
앞서 다른 은행들도 예금금리를 줄줄이 낮췄다. 신한은행은 지난 20일 ‘쏠편한 정기예금’ 최고금리(1년만기 기준, 우대금리 포함)를 2.95%로 인하했다. SC제일은행은 지난 17일 네 가지 거치식예금(정기예금)의 금리를 최대 0.50%포인트(p) 낮췄고, 하나은행도 14일 세 가지 정기예금 상품의 12∼60개월 만기 기본 금리를 0.20%p씩 인하했다.
은행권 예금금리는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2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75%로 0.25%p 더 낮출 경우, 이를 계기로 은행들이 금리 인하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은행의 대출 금리는 여전히 4%대를 웃돌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과 11월 기준금리를 0.25%p씩 인하했지만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오히려 올라갔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은행채 금리와 코픽스(COFIX) 등 시장·조달 금리를 반영한 ‘기준금리’에 위험 비용 같은 ‘가산금리’를 더한 뒤, 은행 본점이나 영업점장 전결로 조정하는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빼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수개월째 은행 대출금리가 낮아지지 않는 것은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계 대출 문턱을 높이기 위해 대출금리를 꾸준히 인상해왔다. 가산금리를 높이는 한편, 우대금리는 낮추는 방식이 활용됐다. 5대 은행이 전체 가계대출에 매긴 가산금리(가감조정금리 적용 전)는 지난해 1월 2.99%에서 12월 3.18%로 상승했다. 가감조정금리는 같은 기간 2.21%에서 1.51%로 크게 떨어졌다. 은행 입장에선 우대금리를 축소할수록 대출금리를 높게 쳐서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은행들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당국의 압박으로 대출 수요를 조절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대출금리를 올렸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가산금리 인상은 대출총량 관리 차원”이라며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산금리를 낮추면 집값 폭등과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책임이 뒤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이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이용한 ‘꼼수’를 써왔다는 지적에 대해 “우대금리는 고객별로 적용 여부가 달라,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 시장 흐름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예대 금리차를 확대해 이자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분출하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의 대출금리 산출 근거를 직접 점검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지난 21일 은행 20곳에 공문을 보내 차주별·상품별로 준거·가산금리 변동내역과 근거, 우대금리 적용현황 등의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은행들이 우대금리를 이용해 임의로 높은 대출금리를 유지해온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나섰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전날 월례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하라는 게 기본적으로 시장에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며 “시차가 존재하고, 작년에는 가계부채 관리라는 부분도 있었지만, 올해 들어와서는 시간도 지났고, 이제는 반영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금리 인하로 인해 촉발될 수 있는 가계대출 증가에 대해선 “현재까지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