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 속 스마트 공장? 북한이 꿈꾸는 4차 산업혁명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전력난 속 스마트 공장? 북한이 꿈꾸는 4차 산업혁명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기사승인 2025-04-03 13:36:38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경제와 사회 전반에 혁신을 가져오는 거대한 흐름이다.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로봇공학 등으로 대표되는 이 혁명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글로벌 경제를 재편하고 있다. 국제 제재와 고립 속에서도 북한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북한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라 할 수 있는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컴퓨터 수치제어)가 자리 잡고 있다.

김정은은 CNC 기술을 단순한 기계 제어 기술로 보지 않고 북한 경제 현대화와 국방력 강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디지털 엔진’으로 간주한다. 마치 AI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듯, CNC는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고 정밀도를 높이며 북한 경제의 자립적 발전을 이끄는 핵심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1. CNC와 4차 산업혁명 : 북한식 디지털 전환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목표는 효율성, 자동화, 지능화이다. 김정은 정권 역시 이러한 목표를 북한식으로 구현하기 위해 CNC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에 개발된 CNC 기술은 김정은 정권 들어 더욱 체계적으로 확장됐다. 국방뿐 아니라 민간 산업 전반으로 그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김정은은 2016년 제7차 당대회 시정연설에서 “생산 공정의 자동화와 무인화를 통해 경제 전반을 세계 선진 수준에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마치 AI가 인간의 반복적인 작업을 대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처럼, CNC 기술이 북한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국방력 강화, 민간 산업 현대화, 체제 선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째, CNC 기술은 초기에는 주로 국방 산업에서 활용되었으며, 정밀 무기 제작 및 군사 장비 개발에 기여했다. 이는 북한이 자주국방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둘째, 국방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축적된 기술을 민간 산업으로 확장하여 공업, 농업, 경공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주민 생활 수준을 향상하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디지털 전환과 기술 발전을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하며, 이를 통해 대내외적으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2. 스마트 공장의 시작 : 주요 공장의 CNC 적용 사례

전 세계가 스마트 공장을 통해 제조 혁신을 이루고 있듯, 북한도 CNC 기술을 활용해 자체적인 스마트 제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주요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 : 북한 기계공업의 중심지로 불리는 이 공장은 CNC 공작기계를 대량 생산하여 다른 산업 부문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마치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로봇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것과 비슷하다.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은 국방과 민간 산업 모두에 필요한 첨단 설비를 제작하며 북한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양책베어링공장 : 이 공장은 CNC 선반 및 연마 공정을 도입해 메인 베어링의 정밀성과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킨 곳이다. 자동 소재 공급 시스템을 통해 노동력을 절감하고 생산 속도를 개선했으며, 마이크론 단위의 정밀도를 유지하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스마트 제조의 초기 단계로 평가되는 사례다.

▶금성트랙터공장 : 이 공장은 농업 기계 제조에서 연마 공정을 자동화하여 농업 현대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한 곳이다. 트랙터 생산에 특화된 설비를 갖추고 있으며, CNC 기술을 통해 생산 효율성과 품질을 높이고 있다.

▶단천광산기계공장 : 이 공장은 광산 기계 제조 과정에서 CNC 보링 및 평삭 공정을 적용하여 정밀도와 생산성을 높인 곳이다. 이는 광산 장비 제작에서 현대적 설비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광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3. 민간 산업으로 확장되는 북한판 4차 산업혁명

CNC 기술은 단순히 군수산업이나 중공업에 머물지 않고, 주민 생활과 밀접한 경공업 및 농업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마치 AI와 빅 데이터가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며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유사하다.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 : 식료품 생산의 완전 자동화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은 무인 로봇을 활용해 식료품 생산 공정을 완전 자동화했다. 이는 인공지능(AI) 기반 로봇이 제조 현장에서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글로벌 제조업 트렌드와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자동화는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어린이용 식료품이라는 점에서 위생과 품질 관리가 중요한데, 무인 시스템은 이를 더욱 철저히 보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라선맥주공장 : 세척 및 포장 설비의 자동화

라선맥주공장은 맥주병 세척과 포장 설비를 자동화하여 생산 속도와 품질을 동시에 개선했다. 이는 맥주 제조 과정에서 반복적이고 시간 소모적인 작업을 기계가 대체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 관리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설비는 맥주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고, 포장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정성제약종합공장 : 의약품 적재 및 포장의 자동 시스템

정성제약종합공장은 의약품 적재 및 포장을 위한 자동 시스템을 구축했다. 제약 산업에서 자동화는 의약품의 정확한 계량, 위생적인 포장, 그리고 적재 과정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다. 이는 북한이 제약 분야에서도 글로벌 표준에 가까운 기술 발전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양교육도서인쇄공장: 무인운반차 도입

평양교육도서인쇄공장은 무인운반차를 도입해 인쇄물 운송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무인운반차는 대규모 인쇄물 생산 현장에서 작업자의 수고를 덜고, 빠르고 정확한 물류 처리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북한이 물류와 공급망 관리에서도 첨단 기술을 활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중평채소온실농장 : 스마트팜 기술 도입

중평채소온실농장은 재배환경 자동조절 시스템을 통해 온실 작물의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이 시스템은 온도, 습도, 조명 등을 자동으로 조절하여 최적의 재배 환경을 유지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스마트팜(Smart Farm) 기술과 유사하며, 농업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향상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평양버섯농장 : 멸균 공정의 자동화

평양버섯농장은 멸균 공정을 자동화하여 고품질 버섯 생산이 가능해졌다. 버섯 재배 과정에서 멸균은 필수적인 단계로, 이를 자동화하면 균일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고품질 버섯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식량 자급률 향상과 고부가가치 농산물 생산에 기여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4. CNC : 북한 경제의 데이터 엔진

AI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고 판단하며 효율성을 높이는 것처럼, CNC 기술 역시 생산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밀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김정은 정권하에서 CNC는 단순한 기계 제어 기술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이터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은 국제 제재로 인해 첨단 부품 수급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과학기술 연구와 자체 설비 개발에 주력하며 자립적 경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국가 주도의 과학기술 연구를 통해 CNC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연구기관과 그 성과는 다음과 같다.

▶국가과학원 : 국가과학원은 북한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연구기관으로, CNC 공작기계와 관련된 핵심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무인운반차, 자동 포장 로봇 등 다양한 자동화 설비를 개발해 산업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평양기계대학 : 평양기계대학은 기계공학 및 자동화 분야에서 전문 인력을 양성하며, CNC 기술의 연구와 실무 적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대학에서는 CNC 기반 설비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북한식 4차 산업혁명을 지원하고 있다.

▶무인운반차 : 공장과 물류 현장에서 자동화된 운반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개발된 자율주행 차량이다. 이 기술은 2017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약 3년 만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식 기술로 설계되었다. 무인운반차는 모호 PID(Fuzzy PID) 제어 기술을 활용하여 자율적인 경로 주행과 장애물 회피가 가능하다. 조종 컴퓨터와 HMI(Human Machine Interface)를 통해 자동 및 수동 조작이 모두 가능하다. 터치스크린 등을 활용해 사용자가 기기를 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로봇 및 컨베이어 벨트와 연계되어 완전 자동화된 물류 체계를 지원한다.

▶자동 포장 로봇 : 제조업 현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효율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설계된 자동화 기기이다. 자동 포장 로봇은 반복적이고 정밀한 포장 작업을 자동으로 수행하며,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제품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일부 로봇은 자유도 설계를 적용해 복잡한 동작도 가능하며, 도색이나 용접과 같은 작업에도 활용될 수 있다. 자동 포장 로봇은 식품, 의약품 등 대량 생산되는 제품의 포장 공정에 사용되며, 무인 창고 및 통합 생산 체계와 연계되어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CNC 공작기계 : 금속 가공과 같은 정밀한 제조 작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장비이다. CNC 공작기계는 금속 절단, 드릴링, 밀링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기계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이러한 기계를 자체적으로 설계·제작하여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독립적인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CNC 공작기계는 군수산업에서 무기 부품 제작에 사용되며, 민간 제조업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북한의 CNC 기술은 단순한 기계 제어를 넘어 국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이터 기반 엔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제 제재와 자원 부족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북한은 자립적 경제 발전과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해 과학기술 연구와 자체 설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부족과 국제적 고립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기술 혁신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정권하에서 CNC 기술은 북한식 산업 현대화와 자립 경제 건설의 상징적 요소로 자리 잡고 있으며, 향후 북한 경제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5. 북한판 AI 혁명의 가능성과 한계

김정은 정권 하에서 CNC 기술은 단순히 제조업 혁신의 도구가 아니라, 북한 경제 현대화를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국방 중심에서 시작된 이 기술은 민간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며 주민 생활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비효율성과 보여주기식 선전, 글로벌 가치사슬의 한계, 지속가능한 발전영역에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비효율성과 보여주기식 : CNC 기술은 북한 경제 현대화와 자립 경제를 상징적으로 강조하는 선전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성과보다는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강하다. 예컨대, CNC 공작기계의 생산과 보급이 과장되었으며, 일부 공장은 실질적 활용보다는 선전용으로 기능하고 있다. 김정은이 시찰하고 간 뒤에는 전력난과 재원확보가 어려워 운영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아 보여주기식 선전용으로 비효율성은 북한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한계 : 북한의 CNC 기술은 국제 제재와 폐쇄적 경제 체제로 인해 글로벌 가치사슬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고급 부품과 기술 교류가 차단되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제 CNC 공작기계는 일부 제삼 세계 국가에서 사용되지만, 주요 시장에서는 신뢰도와 성능이 검증되지 않아 외부 확산이 제한적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종합적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가운데서 부품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고질적인 북한의 기반 산업의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문제점 : CNC 설비 운영에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고급 부품이 필수적이나, 북한의 전력난과 자원 부족은 생산 현장에서 설비 가동을 어렵게 만든다. 유지보수와 기술 인력 부족도 문제로 지적되며, 이는 장기적으로 CNC화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한다. 북한 산업의 이러한 인프라 부족은 온 나라의 CNC화를 이룰 수 없으며 단지 선전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AI와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를 연결하는 시대에, 북한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디지털 혁명을 꿈꾸고 있다. CNC라는 ‘북한판 AI’가 폐쇄적 경제 체제 속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 그리고 그것이 주민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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