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에너지3법(전력망확충법·고준위방폐장법·해상풍력특별법)이 뒤늦게나마 통과돼 장기 정체된 에너지 정책이 일시적으로 속도를 내는 듯하나, 업계에선 당장 내년부터 착수해야 할 제12차 전기본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후 조기 대선 체제서 선출될 차기 정부의 기조에 따라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이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14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2026년부터 2040년까지 적용될 12차 전기본 수립을 위해 내년 중순을 목표로 실무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절차상 지연이 없다면 12차 전기본은 2026년 말 수립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앞서 2월 통과된 11차 전기본은 목표 전력수요를 2023년 546TWh(하계 최대전력 98.3GW)에서 2030년 590.1TWh(하계 최대전력 111.4GW), 2038년 624.5TWh(하계 최대전력 129.3GW)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원전 설비용량은 2038년까지 35.2GW(2023년 기준 24.7GW)를, 재생에너지는 121.9GW(2023년 30GW)까지 갖출 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2038년 발전 예상량은 원전이 248TWh(테라와트시), 재생에너지는 206.2TWh로 산정됐다.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의 전력수급계획인 11차 전기본은 당초 2023년 말까지 초안을 내놓은 뒤 지난해 상반기 중 최종안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여야의 에너지 정책 대립 속에 지난해 총선을 거쳐 약 10개월이 지난 올 2월에야 최종 확정됐다. 그 사이 Chat GPT 등 AI(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수요가 폭증했다. 불과 2년 전과 현재의 전력수요치가 크게 상이한 셈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11차 전기본 전력수요 산정은 사실상 지난해 초 이전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12차 전기본에서 AI 데이터센터발 증가분이 크게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는 글로벌 전력수요를 2022년 470TWh에서 2026년 1050TWh로 2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AI의 발달이 더욱 가속하면서 매달 또는 분기별로 전력수요량이 급증하는 가운데, 정확한 전력수요와 발전 예상량 데이터를 책정해 글로벌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기 위해선 12차 전기본 준비에 지금부터 나설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11차 전기본이 1년 넘게 지연돼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를 일각에서 받는 만큼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관점에서다.
그러나 조기 대선 체제에서 이 역시 불투명할 전망이다. 특히 11차 전기본에는 지난 2015년 7차 전기본 이후 10년 만에 대형 원전 2기(2.8GW 규모 2기),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0.7GW) 등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포함됐는데, 이마저도 야당의 반대로 당초 계획 대비 1기 축소된 터라 만약 조기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될 경우 이러한 에너지 플랜이 완전히 초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가 옳다, 원전이 옳다’의 문제가 아니라 매년 뒤바뀌는 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매우 불확실한 업황에 놓여 있다”며 “국가는 거시적 목표만 제시하고, 수요자-공급자 간 계약 주도로 가격 경쟁력이 반영된 시장이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적 요인과 함께 급변하는 사회와 기술력 등에 따른 불확실성도 높아지면서 현재의 전기본 수립 체계를 중장기적 전력수급전망인 ‘아웃룩(outlook)’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아웃룩 방식은 정부가 4~5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해 각각의 전력수요를 큰 비전으로 제시하고, 시장에서 매커니즘에 따라 최적의 에너지원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결국 재생에너지, 원전과 같은 에너지원 갈등이 정쟁화되는 것인데, 아웃룩 전환 시 이 부분이 어느 정도 희석될 수 있다”며 “미국, 영국 등과 더불어 최근 일본에서도 아웃룩 방식으로 기술개발 정도에 따라 에너지원을 다양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