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조기 대선을 2주 앞두고 택배 노동자들의 참정권 보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 7일 배송, 휴일배송 등 물류 경쟁 속에서 투표할 시간이 없는 택배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이 반복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선거 당일 배송을 멈추고 투표에 나설 수 있도록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택배사가 당초 정상 운영을 계획했다가 휴무 전환을 재검토하고 있지만 치열한 점유율 경쟁과 구조적 한계에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21일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월 3일 ‘택배 없는 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는 택배사들이 선거 전날 허브를 정상 가동하면 노동자들은 쉬고 싶어도 다음날 이틀 치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부담에 결국 참정권 박탈 당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올해 들어 택배업계 배송 경쟁은 주말과 공휴일까지 아우르는 ‘주 7일 배송’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CJ대한통운이 가장 먼저 주 7일 배송을 도입했고 뒤이어 한진택배가 가세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체국택배를 제외한 주요 민간 택배사들의 6월 3일 대선일 배송 휴무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반면 지난 2020년 4월 총선 당시에는 택배노동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선거 당일 휴무가 보장됐다. 코로나19로 급증한 물량과 열악한 근무환경, 택배 노동자 과로사 등 현실이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다.
이어 2022년 대선에서도 이러한 합의가 일정 부분 이어졌지만 당시 새롭게 택배업에 뛰어든 쿠팡CLS는 예외였다. 쿠팡CLS는 지난 2021년 12월 국토교통부로부터 택배사업자로 등록해 2022년 대선일에도 정상 배송을 강행했다.
노조와 시민단체는 이 같은 상황이 ‘쿠팡발 점유율 경쟁’ 때문이라고 겨냥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택배시장 점유율 1위(37.6%)를 차지한 쿠팡이 6월 3일 정상 근무 방침을 고수하자 다른 택배사들도 이를 따라가고 있다는 시각이다.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은 “쿠팡을 멈추게 해야한다. 쿠팡에서부터 출발한 택배사들의 극단적인 배송 속도 경쟁이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며 “멈출 수 없는 배송이 노동자들을 다시 참정권의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고 배송 속도 경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회를 향해 제도적 장치 마련도 촉구하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이 해당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법적 지위에 선거일 모든 노동자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라는 요구다.
기자회견장에서 윤종오 국토교통위원회 의원은 “하루쯤 택배가 늦어도 괜찮다. 그러나 단 하루라도 참정권이 무시돼선 안된다”며 “택배 노동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공휴일도, 선거일도 없이 아침부터 밤까지 배송을 강요받는다. 노동 형태에 따라 선거권 행사 여부가 달라지면 이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주권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택배업계는 과도한 점유율 경쟁과 특수고용직이라는 구조적인 한계에 여전히 부딪히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이 갑작스럽게 치러지는 ‘조기 대선’라는 점이 겹치며 물류센터 운영 일정에 여유를 두고 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거일 배송을 멈추더라도 그에 따른 후속 물량 처리나 고객 불만 우려 등 복합적인 부담이 작용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택배사 중에서는 롯데글로벌로지스가 당초 6월 3일 집하와 배송을 정상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현재는 내부 소통을 거쳐 근무 여부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역시 대선일 근무 여부에 대해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지정된 임시 공휴일 일정에 근로자를 비롯한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수렴해 물류센터 운영 여부를 조율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 내부 논의가 진행 중이며 선거일 휴무 여부는 그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