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비용 ‘은행 대출’ 택한 이재명, 금융권의 손익계산서

선거비용 ‘은행 대출’ 택한 이재명, 금융권의 손익계산서

기사승인 2025-05-22 06:00:08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펀드 조성 없이 은행 대출을 통해 선거자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금융권은 정치적 부담을 경계하면서도, 유력 후보와의 접점을 기회로 여기는 분위기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기존에 준비했던 350억원 규모의 ‘이재명 펀드’ 출시를 전면 취소하고, 선거자금을 은행 대출로 충당하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최근 선거 캠프를 사칭한 ‘노쇼(No-Show·예약 부도)’ 피해가 잇따르면서다.

조승래 민주당 중앙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전날 본지에 “펀드는 하지 않기로 확정됐다. 최근 캠프 사칭 사기 사례가 급증해, 펀드 방식은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다”면서 “구체적인 대출 규모나 거래 은행 등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김윤덕 민주당 총괄선거대책본부 총무본부장도 지난 19일 기자들을 만나 “펀드를 모집하지 않기로 했다”며 “부족한 예산은 은행에서 대출받은 뒤 8월에 선거비용을 보전받으면 갚는 식으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결정에 금융권은 ‘표정 관리’에 나선 모양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특정 정당이라는 이유로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는다. 그냥 하나의 금융 거래일 뿐”이라며 “이익 보전 면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상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치적 여건과 관계없이 은행 입장에선 손해 볼 일은 아니다”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다만 물밑에선 손익 계산이 분주할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금융산업은 규제 중심의 내수 산업이다. 금융당국의 규제와 정치적 외풍에 민감한 구조”라며 “표면적으로는 ‘무색무취’한 입장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저마다 셈법이 복잡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금융권은 흔히 정당과의 관계 설정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깝게도 멀게도 말라는 뜻)’의 딜레마로 표현한다. 특정 정당과 지나치게 가까워질 경우 정치적 편향 의혹에 휘말릴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멀어지면 정권교체 이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실제로 역대 정부마다 금융권 수장은 정권교체기 파고를 비껴가지 못했다. MB정부의 ‘금융계 4대 천황’, 박근혜 정부의 ‘서금회(서강대 금융 인사 모임)’ 출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연임을 포기한 금융지주 회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재 일부 금융지주 회장들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이번 대선과 관련된 판단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이번 민주당의 선거자금 마련 방식도 마찬가지로 ‘양날의 검’이라는 평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당선 가능성 부문에서 독보적 우위를 보이는 만큼, 유력 후보 측과 비공식적인 소통 창구를 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향후 인허가나 정무적 소통에서 유리한 입지가 기대된다. 특히 올해 초 이 후보가 6대 주요 시중은행장(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을 직접 호출한 전례도 있어, 금융권 입장에선 정무적 실익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런 관계 설정이 외부에 노출될 경우, 금융권이 입게 될 정파적 리스크에 대한 경계도 뚜렷하다. 다른 정당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고, 정권이 바뀔 경우 불리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은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기관이다. 고객 중엔 민주당 지지자뿐 아니라 국민의힘 지지자도 있을 것”이라며 “브랜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정당과의 거래는 고객정보 보호 원칙상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며 “노출될 경우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물론, 은행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해 철저한 비공개가 원칙”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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