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시작된 변화, 북한 사회를 흔들다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골목에서 시작된 변화, 북한 사회를 흔들다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기사승인 2025-06-06 12:54:03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1. 동대원구역, 단층집이 밀집된 서민들의 삶의 현장


평양은 오랫동안 북한 체제의 상징적 무대이자, 철저한 통제와 계획경제의 전형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또 다른 평양의 얼굴이 존재한다. 바로 동대원구역과 같은 도시의 변두리에서 펼쳐지는 서민들의 치열한 생존 현장이다.

이곳의 좁은 골목과 단층집, 그리고 공식 시장에서조차 보기 힘든 서민들의 삶은 북한 사회의 밑바닥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주민들은 국가의 배급과 통제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메뚜기시장’이라 불리는 비공식 장터와 길거리 장사에 의존한다. 단속을 피해 빠르게 짐을 싸는 모습, 하루 벌이로 연명하는 소규모 상인들 그리고 밤이면 전기조차 부족해 호롱불을 켜야 하는 가난한 가정들. 이러한 일상은 북한 경제가 더 이상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도시들에서는 공식 경제보다 시장경제와 비공식 경제가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 상인과 신흥 자본가(돈주) 그리고 국가기관이 얽힌 복합적인 경제 구조가 형성돼 있다.

동대원구역의 사례는 북한 사회의 불평등과 계층화, 그리고 시장화가 가져온 변화와 갈등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생존을 위한 다양한 전략과 자생적 네트워크, 그리고 점차 확대되는 시장경제의 흐름은 북한 사회가 이미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글은 이처럼 평양의 이중적 현실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며,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제 평양은 단순한 권력과 체제의 상징을 넘어 변화와 적응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품은 도시로 다시 읽혀야 한다.

2. 동대원구역의 주요시설과 랜드마크

동대원구역은 평양시 대동강 동쪽에 위치하며, 평양시의 중심부에 가까운 지역이다. 행정적으로는 북쪽으로 대동강구역, 남쪽으로 선교구역, 동쪽으로 사동구역과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중구역과 마주하고 있다. 대동강을 따라 형성된 지리적 특징 덕분에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동대원구역은 노동자와 빈민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산업 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동대원피복공장과 평양신발공장은 의류와 신발을 생산하며 해외 주문을 처리하고 있다. 이곳은 또한 주체사상탑과 같은 랜드마크를 통해 북한 체제의 상징성을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 활동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출피복공장 : 모란봉은하피복공장과 동대원은하피복공장은 북한 평양시 동대원구역에 위치한 주요 의류가공 공장들이다. 각각 약 2000명과 1000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 이 공장들은 해외 주문을 받아 남성과 여성 정장을 제작하며 과거 DAIZ, 이랜드, 코오롱 등 한국 중소기업과 협력한 바 있다. 노동자들은 월급으로 북한 돈 약 5000원을 받으며, 성과급으로 5~10달러(북한 돈 약 40~80만원)를 추가로 지급받는다. 작업 환경은 열악하여 새벽 2~3시까지 야간작업이 이루어지지만, 회사에서 배급을 보장해 생계유지에는 어려움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김일성고급당학교 : 평양시 동대원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북한의 최고 당 간부 양성 및 재교육 기관이다. 이 학교는 도당 과장급 이상과 중앙당 지도원급 이상의 고위 당 간부를 대상으로 한다. 교육 기간은 정규반 기준 3년, 재교육반은 1년 등으로 나뉜다. 학생 수는 약 1200명으로 추산된다. 교육 과정은 김일성·김정일 혁명 역사, 주체사상, 당정책 등의 정치학 중심 과목과 선택 과목으로 구성된다. 대부분의 학생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중앙당 고급 간부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들이 강사진을 맡는다. 이 학교는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간부들이 거치는 필수 교육기관으로, 김일성 주석이 초대 교장을 맡았다.

▶금성정치대학 : 동대원구역에 위치한 대학으로, 20~30대 청년 및 근로 단체 간부를 양성하고 재교육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46년 중앙청년간부학교로 시작해 여러 차례 개편을 거쳐 1974년 금성정치대학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 대학은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과 근로 단체 간부를 양성하는 고등교육 과정을 운영하며, 학생 수는 300명으로서 정규 과정 외에도 단기 위탁교육과 강습회를 제공한다. 금성정치대학은 당의 영도를 중심으로 정치 실무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며, 북한 혁명과 건설에 기여할 간부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업시설 : 상업시설은 시민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맥줏집은 3~4개 있고, 외화 식당은 대동강식당, 평양외교단회관식당, 문수식당이 있다. 이곳의 외화 식당 주인은 간부 인맥들을 활용해서 투자한 개인 돈주라고 한다. 동대원구역은 동대원시장 1개, 골목시장 36개, 상점 108개, 매점 400개가 개인이 투자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동강식당 : 평양 대동강 변에 있는 3층짜리 대형 수산물 식당으로, 1층에는 철갑상어·연어·조개류 등 다양한 수산물이 있는 대형 수조가, 2층은 전문 식당, 3층은 뷔페식 식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을 대표하는 인민 봉사기지”라고 언급할 만큼 유명하며, 평양냉면, 수산물 요리 등이 대표 메뉴이다.

▶평양외교단회관식당 : 평양외교단회관식당(대동강외교단회관)은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 직원 등 외국인과 북한 상류층이 주로 이용하는 고급 시설이다. 식당 외에도 수영장, 사우나, 식료품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과거에는 수영장 이용 시 내·외국인 구분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요일 구분 없이 모두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대표적인 메뉴는 불고기 정식 등 한식이며, 가격은 1인분에 50~70달러로 평양 내에서도 매우 비싼 편이다. 평양외교단회관식당은 외국인과 상류층을 겨냥한 고급 식당으로, 한 번 방문 시 100달러 이상 지출하는 경우도 흔하다.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인, 북한 상류층이 주로 찾으며, 평양의 대표적인 고급 외화 식당 중 하나로 꼽힌다.

▶문수식당 : 평양의 문수지구에 있는 식당으로, 특히 전통 막걸리와 속성 맥주로 유명하다. 막걸리는 발효 기사 손금희 씨가 전통 제법을 개량해 제조 기간을 단축했으며, 시원하고 상쾌한 맛으로 평양 시민과 외교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막걸리 외에도 다양한 북한 전통주와 음식이 제공된다.

▶산업시설 : 경련애국사이다공장에서는 음료를 생산하고 있다. 동대원피복공장에서는 셔츠, 학생복 등 의류 제작한다. 평양신발공장에서는 신발을 제조하고 있다. 동대원구역 수출피복공장은 대규모공장 5개, 중규모공장 10개, 소규모공장 60개가 가동 중이다.

▶주체사상탑 : 주체사상탑은 평양의 랜드마크이자 평양시 정경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는 주요 관광지로 잘 알려 있다. 높이 17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 중 하나로 평가되며, 흰색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150m의 탑신과 붉은색 유리로 제작된 20m 높이의 횃불 모양 봉화 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은 70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김일성의 생일을 상징하며, 정면에는 ‘주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기단 앞에는 ‘누리에 빛나라 주체사상이여’라는 헌시비가 있다.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형상화한 군상과 대형 분수대가 탑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녹지 및 공원 : 문수봉은 동대원구역 냉천일동에 위치한 해발 82m의 봉우리로,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워 ‘문수봉’이라 불린다. 이 봉우리 주변은 낮은 구릉지대로 삼마산 등과 이어져 있으며, 문수봉 북쪽 중턱에는 천연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문수봉 이깔나무가 있다. 강안공원 등 대동강 변에 조성된 공원이 있어 주민들에게 여가와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평양시 전반적으로 공해가 적은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으며, 녹지가 잘 배치되어 있어 쾌적한 도시 환경을 자랑할 만하다.

3. 평양시 동대원구역 골목 시장경제 활동 

● 단층집 밀집 지역에 생겨난 구멍가게

북한의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한 곳을 들여다보면, 주민들의 생존 방식이 얼마나 절박하고 다층적인지 실감할 수 있다. 이곳은 단층집이 빼곡히 들어선 빈곤층 밀집지로,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공식 장마당조차 이용하기 힘든 이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다. 건물 층수가 낮고 슬레이트 지붕의 ‘땅집’이 많은 곳일수록 빈곤이 집중되어 있다. 

동대원구역은 동마다 2개 정도의 골목시장이 있다. 목이 좋은 삼거리나 주택에 개인이 운영하는 상점이 무려 108개가 생겨났다. 집을 개조하여 만든 매점은 400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개인이 운영하는 매점에서는 선술집처럼 술이나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곳과 생활필수품을 파는 곳으로 나누어지며, 이곳에는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제품이나 평성가공품들이 입점 되고 유통되고 있다.

● 단층집은 비밀리 하는 비공식 시장 천국

공식 장마당의 엄격한 통제와 높은 자릿세로 인해, 많은 주민들은 이른바 메뚜기시장이라 불리는 비공식 골목시장 및 길거리 장사에 의존하게 된다. 단속이 시작되면 즉시 물건을 챙겨 이동하는 모습에서 유래된 ‘메뚜기’라는 명칭은, 이 시장의 유동성과 비공식성을 상징한다. 공식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서민들은 골목, 공터, 주택가 앞에서 소규모로 장사를 이어가며, 하루 500원 정도의 저렴한 장세만 부담한다. 

특히 새벽이나 야간에는 메뚜기시장이 더욱 활기를 띠며, 단층주택 지역은 아파트에 비해 단속의 위험이 적어 비공식적, 불법적 경제활동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 일대는 술집, 안마, 파티, 매춘, 심지어 마약 거래까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지역으로, 평양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

● 수출 피복공장과 가내수공업의 산실

동대원구역에는 수출 피복공장과 봉제공장 등 소규모 공업 시설이 다수 존재한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월 북한돈 5000원 정도의 임금과 성과급으로 5~10달러(북한 돈 약 40~80만원)를 받으며,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새벽까지 야간작업에 시달린다. 그러나 회사에서 배급이 보장된다는 점이 그나마 생계유지에 도움이 되고 있다. 

주민들은 집 주변에서 술이나 두부를 손수 제조해 판매하고, 부산물로 돼지나 닭을 사육하며, 전기가 부족해 호롱불을 켜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가스 미보급으로 인해 연탄을 직접 만들어 난방을 해결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빈번하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순번을 정해 보초를 서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어 나간다.

● 약탈적인 초기 자본주의 모습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국가 배급제의 붕괴는 북한 주민들에게 시장 경제적 생존 전략을 강요했다. 장마당에서의 장사, 물물교환, 심지어 매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공식 경제활동이 확산했고, 이는 북한 사회의 초기 자본주의적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장경제의 확산은 빈부격차와 도시-농촌, 중심지-변두리 간 격차를 심화시키고, 공식 경제와 비공식 경제가 혼재하는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다. 특히 여성들이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시장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 빈곤층은 극단적인 생존 전략에 내몰리는 등 사회적 취약성이 두드러진다. 북한 당국은 시장을 통제·단속하면서도, 시장은 여전히 주민 생존의 필수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동대원구역의 골목 시장경제 활동은 북한 공식 경제의 붕괴와 맞물려, 주민들이 다양한 비공식 생존 전략을 통해 오늘을 버티는 현장을 보여준다. 공식 시장과 비공식 시장, 가내수공업, 공장 노동 등 다양한 경제활동이 혼재하는 이 지역은 북한 사회의 가장 취약한 현실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4. 북한 체제와 사회 전반에 근본적 변화 예고

동대원구역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평양, 나아가 북한 사회의 이중적 현실과 근본적 변화를 뚜렷이 관찰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와 체제의 상징성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비공식 시장경제와 자생적 생존 전략이 주민들의 일상과 삶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동대원구역 주민들은 공식 배급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메뚜기시장과 같은 비공식 경제활동, 가내수공업, 소규모 장사, 심지어 매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장화는 단순한 경제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북한 사회의 계층화, 빈부격차, 도시와 농촌, 중심과 변두리의 격차 심화 등 새로운 사회적 문제도 동반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확대는 북한 주민들에게 생존의 활로이자, 변화와 적응의 공간이 되고 있다. 공식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고, 시장과 비공식 경제가 실질적으로 북한 경제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는 점은, 북한 체제와 사회 전반에 근본적 변화를 예고한다.

동대원구역의 사례는 북한 사회가 이미 체제 내부에서부터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앞으로 시장경제의 확대가 북한의 경제구조와 사회질서, 나아가 한반도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임을 시사한다. 

평양은 더 이상 단순한 권력과 체제의 상징이 아니라, 변화와 적응,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도시로 다시 읽혀야 할 것이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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