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이 삐질, 심장이 쿵쾅…전화가 무서워요 [쿠키청년기자단]

땀이 삐질, 심장이 쿵쾅…전화가 무서워요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5-06-06 15:30:04
문자 소통에 익숙한 청년층 사이에서 전화 공포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유정민 쿠키청년기자

“지잉, 지잉”

시한폭탄이 터지려 한다. 긴장한 탓에 몸이 굳고 눈알은 바쁘게 굴러간다. 요동치는 심장과 창백해진 얼굴은 덤이다. 결국 전화를 받지 못한다. 전형적인 전화 공포증 증상이다.

전화 공포증은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공포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 문자가 더 익숙한 청년세대에 흔히 볼 수 있는 포비아(phobia)다. 지난해 10월, 구인·구직 전문 플랫폼 ‘알바천국’이 Z세대 7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명 중 2명꼴(40.8%)로 전화 공포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화를 걸기 위해 메모장에 적었던 대본 중 일부. 유정민 쿠키청년기자

기자도 전화 공포증을 겪고 있다. 휴대전화 진동 소리만 연달아 울려도 얼음이 된다. 전화를 걸어야 할 때면 메모장에 “안녕하세요”부터 시작하는 대본을 만든다. 소리 내 몇 번 연습한 뒤에야 전화를 건다. 피자집에 주문할 때도, 학보사 시절 인터뷰 요청을 할 때도 그랬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실수한 게 없었나 통화 내용을 곱씹기 일쑤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이 확산하면서 전화 공포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공포증 극복을 돕는 심리상담센터와 스피치 학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스피치 학원에 방문해 전화 공포증 상담을 받아봤다. 상담은 1:1로 40분간 진행됐다.

상담사는 “불안과 공포는 뇌가 학습을 통해 만들어낸 방어기제이기도 하다”며 “전화 공포증이 생기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담사는 전화를 무서워하는 원인으로 △전화 경험이 적은 세대 특성 △상대에게 전화로 거절 당해본 기억 △통화를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짚었다. 이어 그는 전화에 겁먹지 않기 위해 연습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줬다.

첫째, 친구와 통화하며 즐거운 경험부터 쌓자. 

첫 번째 해결책을 위해 메신저로 일상 대화를 주고받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자 ‘무슨 일 있어?’라는 말이 돌아왔다. 별일 아니면 메시지를 보냈을 텐데 전화를 해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고 했다.

“뭐해?”를 시작으로 날씨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등 사소한 주제로 친구와 수다를 한참 떨었다. 대화 중간중간 공백이 생길 땐 여전히 당황했지만,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렇게 가까운 상대와 전화 경험을 쌓다 보니 전화 앞에서 머뭇거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통화할 내용을 키워드 위주로 적은 대본. 유정민 쿠키청년기자

둘째, 대본은 키워드 중심으로, 말투는 자연스럽게.

마침, 병원에 문의할 일이 있어 상담사의 코칭대로 키워드로 메모하는 연습을 했다. 통화 상대, 통화 목적 그리고 궁금한 내용을 간략히 적었다. 줄줄 읽을 대본이 없다고 생각하니 신호음이 가는 동안은 불안에 떨었다.

접수처 직원과 연결되자 대본에 적힌 키워드를 문장으로 완성해 전화 목적을 말했다. 긴장한 탓에 전반적으로 버벅거리긴 했지만, 추임새를 섞어 대처하다 보니 한결 나았다. 완결된 문장을 읽는 것보다 억양과 말투, 쉼의 길이가 확연히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키워드 대본에 익숙해지면 점점 대본 의존도도 낮아지고 전화 기술도 늘 것이다.

전화 걸기 전 거울을 보고 미소를 지어보는 기자 모습. 유정민 쿠키청년기자

셋째, 미소는 목소리도 바꾼다.


실행하기 가장 어려운 방법이었다. 심란한 마음과 대비되는 표정을 지으려 하니 곤혹이었다. 미소를 연습해도 전화기를 들었다 하면 표정이 어두워졌다.

키워드 대본을 만들어 놓고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앞에 거울을 두어 전화하는 동안 의식해서 미소를 지었다. 표정은 어색해 보여도 미소가 긴장을 환기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웃으면서 말하니 톤도 밝아지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서 훨씬 자신감 있게 들렸다.

통신사 상담원과 통화를 마친 뒤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함이 묻어나는 고객님 음성이 힘이 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미소를 띠고 통화하자 목소리 톤도 자연스럽게 높아졌고, 응대자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정민 쿠키청년기자
yujeongmin2082@naver.com
유정민 쿠키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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