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화폰’ 기록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의 수사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양측 모두 ‘내란 혐의’ 실체를 규명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조직의 생존과 주도권을 건 기 싸움이 치열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9일 윤 전 대통령에게 2차 피의자 소환 통보를 했다. 경찰은 지난 5일 1차 소환을 요구했으나 윤 전 대통령 측은 불응했다. 경찰은 3차 통보까지도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 신청까지 검토할 방침이다.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경호처를 통해 체포를 저지하고 비화폰 기록 삭제를 지시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직권남용교사)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검찰도 같은 날 발 빠르게 움직였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9일 오전 대통령경호처를 찾아 비화폰 서버 자료와 폐쇄회로(CC)TV 기록 등 추가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했다. 검찰은 지난달 말부터 경호처와 협의해 기존보다 광범위한 시점의 서버 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으며, 사건 관련자들의 비화폰 통화기록 확보를 위해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도 청구한 상태다.
양 수사기관이 사실상 동일한 증거를 사이에 두고 각자 움직이면서, 법조계 안팎에서는 ‘중복 수사’ 논란과 함께 검경 간 주도권 다툼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경찰은 윤 전 대통령을 직접 소환하는 카드를 꺼내며 국민적 관심을 끌어올리는 한편, 수사 역량을 강조하며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온전히 이양받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검찰은 조직 존폐의 기로에 선 상황에서 비화폰 등 핵심 증거 확보에 집중하며 ‘공소유지를 위한 전문 수사기관’으로서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모습이다.
검찰 출신인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은 “양측 모두 국민이 아닌 조직의 이익을 위해 수사권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수사 경쟁 구조는 조국 전 장관 사건 때부터 시작됐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것도 늦은 감이 있다”며 “과거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 출장 조사 당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반성도 없었다는 점이 검찰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검찰이든 경찰이든 이재명 정부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보여줄 수 있겠지만,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