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리 인하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기대감이 맞물리며 주택 가격이 들썩이고, 가계 부채는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 가운데 부동산대출이 가계대출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은 한국 경제의 고질적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으로 쏠린 자산을 생산성이 높은 기업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언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12일 기준)은 750조79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748조812억원)에 비해 1조9980억원이 늘어난 수치로 이달 들어 10영업일도 안 돼 2조원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이런 추세가 월말까지 유지되면 이달 가계대출 증가액이 5조원을 넘길 가능성도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가계대출 상승’ 공식…굳어진 부동산 자산 쏠림
이와 같은 급격한 가계대출 상승세는 근래의 집값 급등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을 중심으로 오른 집값은 강북권과 경기 과천·분당으로 번지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의 5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0.1%로 지난달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특히 서울의 경우 0.25%에서 0.38%로 뛰면서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진 상태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며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기대감까지 더해지자, 하반기 부동산 시장이 더욱 불안한 흐름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가계대출 총량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한국 경제에서 반복되는 전형적인 시나리오다. 주택담보대출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계부채의 특성상 부동산 시장의 파고에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분 6조원 중 주담대가 5조6000억원을 차지했다. 지난해 국내 부동산 대출 규모는 2600조원을 넘어섰고, 이중 절반에 가까운 48.8%가 가계대출에 해당한다.
타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부동산 자산 쏠림 정도는 높은 편이다. 2023년 기준 국내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4%로 집계되며 독일, 헝가리 등 28개국 중 6위를 차지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52.9%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부동산 자산 쏠림, ‘잠재성장률’까지 갉아먹는다
부동산 자산 집중 현상은 신용시장과 부동산시장 연계를 강화해 대내외 충격 발생 시 금융시스템 취약성을 높인다. 특히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된 상태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채무 불이행이 증가하면서 금융기관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 최후가 한국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중장기적 성장 동력 확보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부동산과 건설업에 대한 과도한 신용 공급이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유발한다고 경고했다. 가계신용과 기업신용을 포함한 민간신용은 일정 수준이 넘어서면 경제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줄어든다. 특히 부동산 부문은 생산성이 낮아 대출 비중이 높아질수록 성장 동력을 약화한다는 설명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창립 제75주년 기념사에서 “손쉽게 경기를 부양하려고 부동산 과잉 투자를 용인해 온 과거의 관행을 떨쳐야 한다”며 “성장잠재력의 지속적인 하락을 막고 경기변동에 강건한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외 기관은 부동산에 집중된 가계부채 등을 고려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다. OECD는 2026년 한국의 잠재 성장률 추정치를 1.98%로 예측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7년부터 2026년까지 1.02%포인트(3.00%→1.98%) 떨어지며 잠재성장률이 공개된 37개국 중 7번째로 하락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역시 경제가 성숙한 국가일수록 잠재성장률이 낮아진다는 점을 고려해도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가 유독 빠르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