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다시 정상에 선 ‘승부사’ 목진석 “마음을 움직이는 바둑 두겠다” [쿠키인터뷰]

10년 만에 다시 정상에 선 ‘승부사’ 목진석 “마음을 움직이는 바둑 두겠다” [쿠키인터뷰]

45세 목진석 9단, 2015년 GS배 이후 10년 만에 우승
월드바둑챔피언십서 루이-이창호-유창혁-야마시타 연파

기사승인 2025-06-22 06:00:06
제6회 월드 바둑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목진석 9단이 19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철녀’ 루이나이웨이 9단, ‘신산’ 이창호 9단, ‘일지매’ 유창혁 9단, ‘기성’ 야마시타 게이고 9단. 이름만으로도 바둑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레전드 기사들이 한 사람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이들을 모두 꺾고 정상에 오른 주인공은 1995년 15세의 나이로 한·중 대항전에서 녜웨이핑 9단을 격침하고 ‘괴동’ 별명을 얻은 목진석 9단이다.

‘영원한 괴동’ 목진석 9단은 1980년생으로 올해 45세다. 1994년 프로 입단에 성공했고 1998년 신인왕전 우승, 1999년 프로10걸전 우승, 2000년 바둑왕전 우승 등 숱한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딱 10년 전이었던 2015년, 목 9단은 35세의 나이로 제20기 GS칼텍스배 우승을 차지한 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당시 우승 직후 인터뷰를 실시간 생중계로 보던 바둑 팬들 중 “목진석 9단이 울컥한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 당시를 회상하는 팬들이 여전히 많다. 

2016년 12월1일, 대한민국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을 이끄는 사령탑으로 선임된 목진석 9단은 약 7년 동안 한국 바둑을 이끌었다. 국가대표 감독직을 내려놓고 ‘승부사’로 복귀를 신고한 목 9단은 신안에서 열린 제6회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10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올랐다. 승부 세계 일선에 돌아온 지 약 1년 반 만의 쾌거다.

지난 19일 서울 성동구 ‘상록수 연구실’ 인근 카페에서 쿠키뉴스와 만난 목진석 9단은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우승”이라며 “첫 판부터 존경하는 루이 사범님과 대국하게 됐고, 이후 이창호 사범님, 유창혁 사범님과 대국에서도 승부에 대한 압박이나 부담 보다 매판 즐겁게 뒀다”고 말했다. 목 9단은 “결승(야마시타 게이고 9단)도 편하게 뒀다”면서 “한·일전, 결승이라는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고 바둑을 둬서 결과도 좋았던 것 같다”고 복기했다.

이번 대회에는 목 9단의 가족이 함께 했다. 과거에는 지방이나 외국에서 대회가 열릴 때 가족 동행은 부담 때문에 꺼렸다는 목 9단은 이번에는 달랐다고. 목 9단은 “아내가 먼저 신안에 함께 가면 어떨지 제안했는데 제가 흔쾌히 수락했다”면서 “반외적인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네 판(루이-이창호-유창혁-야마시타) 모두 바둑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2016년 12월1일, 목진석 9단이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으로 취임했다. 사진은 기자회견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제6회 월드 바둑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목진석 9단이 19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 앞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목진석 9단은 “이번 대회 기간 동안 제가 바둑 둔 걸 방송으로 다시 봤는데, 편해 보였다”고도 말했다. 목 9단은 평소 기보만 보는 것 보다는 방송을 함께 보는 걸 선호한다. “국가대표 감독을 할 때도 방송을 챙겨 봤다”는 목 9단은 “이 선수가 어떨 때 어떤 제스처가 나오고 감정은 어떻게 표출하는지, 그런 것들은 방송을 봐야 보인다”고 설명했다.

바둑TV, K바둑 등 바둑 방송을 보는 것이 주효한 공부 수단 중 하나라는 목 9단은 승부사로 복귀한 초기에는 온라인 대국을 많이 하면서 승부 감각을 되살렸다. 인공지능 광풍이 전 세계 바둑계를 강타할 때 한국 바둑의 선장을 맡았던 목 9단인 만큼, AI에 대한 이해도 역시 뛰어나다. 하지만 바둑 공부를 할 때, 인공지능을 맹신하지 않는다고 목 9단은 강조한다.

목 9단은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수를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하지는 않는다”면서 “초반 포석 공부에 인공지능을 많이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끝내기에서 종종 활용한다”고 언급했다. “승률 그래프를 통해 나타나는 수치에는 별로 민감한 편이 아니”라는 목 9단은 “이 수가 1%, 2% 높으니까 무조건 여기 둬야 한다기 보다는, 제가 생각이 닿지 않았던 지점에 좋은 수가 있다면 그런 부분에서 공부가 된다고 느낀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목 9단은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감독직을 내려놓고 승부사로 돌아온 소회를 밝힌 바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 없는 부분은 바로 ‘두고 싶은 수를 둔다’는 마음이라고. 목 9단은 “두고 싶은 수를 둘 수 있고, 바둑판 위에 스스로 자신만의 바둑을 창조해나갈 수 있는 게 바둑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모방하기 보다는 저만의 바둑을 두려고 한다”면서도 “예전에는 ‘괴초식’, ‘세력 바둑’을 많이 뒀다면 최근에는 그런 걸 정해놓지 않고 그때그때 두고 싶은 수를 둔다”고 말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바둑 두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 없다”는 목 9단은 “바둑을 대하는 자세, 저만의 바둑이 모두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서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바둑을 두고 싶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2015년 GS칼텍스배 우승이 더 극적인 우승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한 목 9단은 “당시에는 그 전 해에 슬럼프가 왔고, 승부를 계속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던 상황에서 절실했던 우승이라 감정이 더욱 복받쳤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저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우승이었다”는 목 9단은 “편한 마음으로 대회 하러 갔다 덜컥 우승한 느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목진석 9단은 “시합 복귀하고 1년 반,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나름대로 바둑 한 길을 걸으며 열심히 해온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면서 “앞으로 제가 승부를 계속해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은 점이 가장 큰 플러스 요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목 9단은 “기회가 될 때마다 바둑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려고 한다”면서 “바둑 팬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프로기사들이 열심히 훈련하고 공부하고, 온 힘을 다해 승부하고 시합한다”고 역설했다.

목 9단은 “바둑을 두는 행위는 팬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프로기사의 바둑은 팬이 있어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팬들에게 항상 감사하다.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을 항상 갖고 기사 생활을 하려고 한다”는 목 9단은 “바둑을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제6회 월드 바둑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목진석 9단이 19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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