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의정부에 사는 김모(45·여)씨는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 귀금속 도매상을 찾았다. 아이들 돌 반지, 결혼 예물을 챙겨 온 김씨는 현금 100만원을 받아들고 가게 문을 나섰다. 김씨는 “집에 보관하고 있으면 아무 쓸모 없는 물건이지만 내다 팔면 부족한 살림에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국제 금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데다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주머니가 얇아지면서 장롱 속 금반지가 ‘외출’을 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애국심과 공익을 위해 나왔던 금반지가 지금은 구멍 난 가계부를 메우고 있다.
서울 종로3가역 일대에 몰려 있는 귀금속 도매상가에는 지난해 말부터 부쩍 손님이 늘었다. 점포당 하루 평균 2명 이상이 귀금속을 팔러 나온다. 금 값이 좋을 때 내놓아 현금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순금 3.75g(1돈)에 10만원이던 금 매입가격은 12일 현재 14만원을 훌쩍 넘었다. 최근에는 하루에 3.75g당 1000∼2000원씩 가격이 뛰고 있다.
종로에서 14년째 도매상을 하고 있다는 박모(42·여) 사장은 12일 “지난해에는 1주일에 10건 안팎이던 매도 건수가 서서히 늘더니 올들어 2배 이상 뛰었다”며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상인이 아니고 소량의 패물을 들고 오는 일반 시민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금붙이를 내놓는 사람들은 30, 40대 주부가 압도적이다. 패물을 팔아 한푼이라도 생활비에 보태려는 것이다. 종로의 한 대형 귀금속 전문점에서 만난 이모(36·여)씨는 “남편 월급이 깎여 살림살이가 빠듯한데 현금으로 저축해두면 이것도 재테크 아니겠느냐”며 “이웃 중에 남편이 일자리를 잃은 집은 평소 끼고 있던 반지까지 모두 팔았다”고 말했다.
취업이 어려워진 20대 여대생도 금반지 팔기 행렬에 가담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최윤희(24·서울시 목동)씨는 “아버지 월급은 제자리인데 물가나 경제상황은 갈수록 나빠져 마냥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가 미안하다”며 “취업할 때까지 용돈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으로 반지들을 팔러 나왔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반인의 금괴 해외 밀반출도 급증하고 있다. 홍콩 중국에서 금을 팔면 국내에서보다 ㎏당 100만원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세관에 따르면 지난해 금괴를 밀반출하려다 적발된 건수는 50건(시가 41억5200만원)에 이른다. 금괴 밀반출은 2005∼2007년에는 1건도 없었다. 인천공항세관 관계자는 “경기 불황과 국제 금값 폭등에 지난해부터 일반인 중심으로 금괴 밀반출 사례가 늘고 있다”며 “밀반출하다 잡힌 사람 중에는 가정주부, 재활용품 수집상인 등 서민들이 적잖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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