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주가가 3000까지 간다던 사람들,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을 사라던 사람들, 펀더멘탈이 튼튼하니 경제위기는 없다던 사람들, 그 수많은 ‘경제전문가’들 말이다. 경제위기는 늘 느닷없이 닥친다. 10년 전 IMF 때도 그랬다. 대비는 커녕 예보도 못 들었는데 어느새 태풍 속이다. 그렇게 엄청난 위기가 다가오는데도 경고음조차 발신하지 못 하는 것이라면 경제전문가란 대체 무슨 소용일까. IMF에 이어 또 다시 경제위기에 휩쓸려가는 요즘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따지고 싶은 심정이 된다.
김광수경제연구소를 이끄는 김광수(49) 소장도 경제전문가다. 그러나 그는 위기를 예고한 드문 경우에 속한다. 그는 ‘기회’나 ‘투자’가 아니라 ‘버블’이나 ‘위기’라는 단어로 보고서를 써왔다. 2004년부터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을 예고했고, 2006년 들어서부터 한국의 부동산버블 붕괴를 지속적으로 경고했다. 지난해 초에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징후를 알리며 산업은행의 인수 시도를 강력 비판했다. 이달 들어서도 국내 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났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한국경제 위기론의 한 진원지인 셈이다.
지난 4일 경기도 일산의 연구소에서 만난 김 소장은 점퍼 차림이었다. 깡마른 몸에 고집스런 눈빛. 글처럼 말도 직설적이다.
“리먼브라더스 망한다는 건 지난해 연초부터 나온 얘기인데 인수한다고 ‘생쇼’를 했죠? 부동산 버블로 세계가 주저않고 있는데 아직도 부동산을 붙잡고 있고, 친기업정책 한다면서 환율 올렸죠? 현실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거나 안 보는 것이죠. 그러니까 30년 40년 전 정책을 반복하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김광수경제연구소가 발신해온 경고들이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시화하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각별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연구소가 발행하는 월 20만원짜리 보고서 ‘경제시평’을 받아보는 이가 현재 2500명에 이른다. 경제부처 관료와 기업체 임원, 금융권 애널리스트 등이 챙겨보고, 해외에서도 받아본다고 한다. 돌려보는 이들까지 추산하면 보고서를 읽는 숫자는 10배 이상 늘어난다. 인터넷에 개설한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카페 회원수도 4만3000명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기발한 분석방법을 쓰는 건 아니다. 경제전문가들이 보는 경제 지표와 통계 수치를 같이 보면서 경제 현실과 경제 현상 사이의 간극을 주시할 뿐이다. 둘 사이가 너무 벌어지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것도 지극히 상식적이다. 연구인력이 특출난 것도 아니다. 전체 직원이 8명인데 대부분이 30대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다른 기관들의 보고서와 구별되는 것은 균형에 있다. 이들은 성장률과 위험도, 정책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본다. 그리고 변화의 양과 속도가 적절한가 과도한가를 재고, 외형적으로 드러난 결과와 내부에 축적된 잠재력을 비교한다. 어느 한 쪽을 강조하거나 어느 한 쪽을 감춰야할 이유가 그들에겐 없다. 둘 중 하나만 내보이는 보고서들과는 결론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생산하는 정보의 정확성은 독립적인 운영구조와 사심 없는 연구태도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지금 시대에 넘쳐나는 수많은 경제전문기관들과 경제전문가들이 왜 틀리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 소장은 경제정보가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생산, 유통, 수용 등 3단계로 나눠서 설명했다.
“먼저 정보의 생산 측면에서 보면, 이해관계가 있는 곳에서 생산된 정보는 왜곡될 가능성이 있어요. 정부 연구소나 재벌 연구소는 통제를 받죠. 정부나 재벌의 의도를 반영해 보고서를 만든다든지, 사업성이 없는데도 사업성이 있는 것처럼 보고서를 꾸며서 여론을 조작한다든지, 그런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죠. 정보 유통도 문제예요. 언론이 여과 기능을 거의 못 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들도 시대착오적인 이념에 빠져서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저 연구소가 어떤 색깔이냐를 먼저 따지니까 왜곡이 일어나는 거죠.”
지난해 말 한 경제신문은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를 선정하면서 김광수경제연구소를 19위에 올려놓았다. 이 신문은 김광수경제연구소의 부상을 “이번 조사의 최대 이변”이라고 설명했다. 그 조사에서 20위는 재벌그룹 산하 경제연구소였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영향력은 21세기형 파워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김 소장에 따르면 20세기형 파워는 대통령, 정부, 대기업, 사법부 등과 같은 제도화된 권력에서 나왔다. 그러나 21세기형 파워는 정보발신력에서 나온다.
“누구든지 정보를 발신하고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잖아요?정보 독점을 기반으로 한 파워는 사라졌어요. 공감을 많이 얻으면 그게 파워가 되는 거예요. (최소한 정보의 차원에서) 21세기에 파워를 갖는 사람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실제로 정부가 네티즌 하나는 못 이기는 수준이잖아요?”
김 소장은 자신의 연구소에 쏠리는 관심을 “믿을만한 정보가 그만큼 드물다는 것 아니겠냐”고 해석하고, “대중들이 정부에서 나오는 정보가 엉터리라는 걸 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대중의 열광도 “제도권 정보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하면서 “정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20세기형 파워와 21세기형 파워가 다르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무라경제연구소 서울지점 연구부장으로 일하던 김 소장은 IMF를 겪으면서 따로 연구소를 차리겠다고 결심했다. IMF 당시 치밀한 원인 분석으로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이름을 알린 그는 이번 경제위기의 책임 역시 정부와 정책의 실패에서 찾는다. IMF를 겪고도 개혁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경제위기가 왔고, 글로벌 경제위기가 없었더라도 한국은 그 자체의 원인에 의해 위기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소장은 “우리 연구소는 정부에 관심을 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정부의 정책은 지금의 현안이나 당사자, 이해관계자만 고려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다음세대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극단적으로 단기적인 시각에서 정책을 결정합니다. 지금 당장의 표가 중요하고, 당장의 책임을 면하는 것이 최우선이니까요. 그런 정책 실패들이 다 몰려서 지금 위기상황이 온 거 아닙니까?”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내는 그들을 향해 일부에서는 “비관론을 판다”고 비난한다. 김 소장은 최근 ‘비관론 비방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반박글을 냈다.
“악성 종양이 자라나고 있는 한국경제를 아무리 낙관적이라고 포장하며 ‘좋아진다’고 선동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살을 째고 피를 흘리더라도 악성 종양을 제거하지 않은 한 결국에는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 경제가 지금 중병에 걸린 것이 맞다면 우리는 어떤 의사를 만나야 하는 것일까.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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