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한나라당 이재오 전 의원을 1일 서울 구산동 자택에서 만났다. 귀국 이후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내가 (현안에 대해) 말하지 않는게 대통령과 정부를 돕는 일”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했다.
이 전 의원이 내놓은 논리는 이렇다. 여당은 대통령과 정부가 일을 잘할 수 있게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여당에서 말이 많이 나오면 정부가 헷갈려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비록 내가 현역은 아니지만 국민 입장으로 한마디 해도 정권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현실정치 거리두기’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얘기다.
이 전 의원은 자신의 귀국이 여권의 지각 변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탓인지 정치인들과의 만남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 계획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외국에 가 계신데 내가 (대통령 관련)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이상득 의원과의 만남 역시 “이 부의장과는 형님 동생하는 사이다.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사이다. 그런데 날짜를 잡아서 만나고 하면 또 ‘이재오가 슬슬 몸풀기 시작했다’는 소리 나온다. 자연스럽게 때되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저녁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남북 축구 경기 관람 계획도 취소했다. 경기장을 찾은 박희태 대표 등 당 지도부와 만남이 괜한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허태열 최고위원의 차녀 결혼식도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이 전 의원은 “당분간 은평에만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측근들은 “이 의원이 한동안 한강 다리를 건너거나 무악재를 넘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조용히 있어도 이재오가 세상을 보고는 있다는 것은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조용한 행보에도 ‘정권의 2인자’로서 자신에게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처지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대화 내내 조심스럽던 이 전 의원은 이말은 꼭 해야겠다는 듯 우리 정치에 대한 속마음을 다소 장황하게 털어놨다. 그는 “해외에 오래 있어보니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과 인도 등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더라. 우리 정치도 국내 문제로 다툴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고 말했다. 또 “집 근처 중앙시장에서 생선가게만 40년하던 분에게 인사드리러 갔는데 가게가 문을 닫았더라. 장사가 안되긴 안되나보다”며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다소 야위었다는 지적에 이 전 의원은 “2㎏이 빠졌다. 어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영양실조로 인한 빈혈 증세가 있다며 앞으로 잘 먹으라고 했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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