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백수라는 말을 들으면 웃음부터 나오는가? 혹은 누가 백수라고 하면 농담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이런 통계는 어떤가? 한 집에 한 명은 백수가 있다, 다섯 가구 중 한 가구의 가장은 백수다, 20대 열 명 중 네 명은 백수다…. 또 이런 단어들은 어떤가? 백수문학, 백수영화, 백수세대, 루저(loser)문화, 하류인생….
누구나 백수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백수 혹은 반백수 상태로 편입되고 있다. 백수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언더그라운드 문화나 청년문화는 이미 백수들에 의해 장악됐다. 젊은이들이 생산하는 문학, 영화, 노래 등에서 백수는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가 됐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의 사회’는 추리닝을 입은 ‘백수들의 사회’로 이동하는 중인가?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실업자들이 가장 급진적인 사회세력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일부의 전망은 현실화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백수가 더는 농담거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백수는 하나의 계층, 하나의 장르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주덕한(39)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백수다. 정치인이든 기자든 공무원이든 청년실업에 대한 얘기를 듣고자 할 때면 그를 찾는다. 주씨는 오랜 백수생활을 밑천으로 백수생활 지침서라고 할 ‘캔맥주를 마시며 생각해낸 인생을 즐기는 방법 170’을 1997년에 출간했고, 국내 최초의 백수단체인 ‘전국백수연대’를 98년에 조직해 10년 넘게 대표직을 맡고 있다. 백수에서 백수생활 전문가로, 다시 백수활동가로 변신한 것이다.
‘전국백수연대 대표’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면서 주씨는 “이 명함을 주면 다들 웃는다”고 말했다.
“전국실업자연대, 이렇게 이름을 지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굳이 백수라고 쓰는 건 그게 쉽고 우리들끼리 실제로 쓰는 말이기 때문이에요. 실업자, 청년실업자, 취업준비생, 이런 용어는 어색해요. 백수란 말이 좋아요. 여유가 느껴지고 웃음도 나고.”
정말 그런 이름의 단체가 있을까 싶지만 전국백수연대는 2006년 서울시에 정식 등록된 어엿한 민간단체(NGO)다. 남의 사무실 한 켠을 공짜로 빌려쓰는 것이긴 해도 여의도에 사무실도 있다. 1998년 저자 신분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된 주씨는 백수조직을 제안하고 자기 삐삐번호를 공개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모인 50여명이 전국백수연대 발기인이 됐다.
백수연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백수회관(cafe.daum.net/backsuhall)’ 회원수는 1만5000명을 넘었다. 주씨는 “지난해부터 회원수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실업문제가 심화된 이유도 있겠지만 백수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IMF 때만 해도 이 고비가 지나가면 실업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누구도 실업문제를 풀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누구나 백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거죠. 그래서 예전과 다르게 백수라는 걸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아요. 백수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백수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라고 보는 이들이 많아진 건 분명해요.”
1993년 성균관대를 졸업한 주씨는 대우자동차,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버젓한 직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 했다. 96년 이후로는 4대보험이 되는 직업을 가져보지 못 했다고 한다. 백수들끼리 하는 말로 ‘없고없고인생’(집도 없고, 차도 없고, 직장도 없고, 4대보험도 없는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교통비, 전화요금 등을 합해 한 달 생활비로 10만원에서 20만원 정도를 씁니다. 그렇게 살아보니 그 범위 안에서 생활을 조율하게 돼요. 잠은 부모님 집에서 자고 생활비는 알바를 해서 벌죠. 돈을 버느라고 시간을 많이 쓰지 않고, 남는 시간에 활동을 하거나 상담을 해요.”
주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백수이기도 하다. 그의 휴대전화는 쉴새없이 울린다. 하루에 서너 건씩 약속이 있다. 온라인 카페 운영, 전화 상담, 취업 교육, 사회적 기업 준비 등이 일상적인 활동인데 토론회 참석, 정부나 시민단체 관계자들과의 미팅 등 대외적인 활동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국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청탁받은 원고를 쓰는 것도 그의 일이다.
자신을 백수활동가로 규정하는 주씨는 “실업문제를 얘기할 때, 백수나 실업자 입장에서 그 문제를 보는 사람이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폼 나는 일은 저 말고도 할 사람이 많아요. 백수들 문제는 아무도 관심이 없잖아요? 실업문제를 다루는 토론회에 가보면 현실을 잘 모르는 공무원들과 박사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백수활동가를 자처하게 된 거죠.”
실업문제에 대한 주씨의 진단은 전문가들하고는 사뭇 다르다. 그는 “고시원에서도 쫓겨나 자살 예고 글을 올리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면서 “당장 이런 사람들부터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백수회관’ 게시판에는 자살 관련 글들이 넘쳐난다. 주씨는 “죽고 싶다는 회원들의 전화를 새벽 3시에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눈높이를 낮추면 취직할 수 있다는 기성세대들의 반복되는 충고가 왜 백수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 하는지 주씨만큼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이도 보지 못 했다.
“한 번 비정규직에 들어가면 거기서 벗어나기 어려워요. 비슷한 임금, 비슷한 회사에서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거 다 알잖아요. 거기서 탈출할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나요? 만약 내 조카, 내 아들이라면 결혼이나 집 장만, 자녀 교육 등에서 악순환이 뻔히 보이는데 그 길로 가라고 권할 수 있을까요?”
그는 88만원세대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청년실업 문제를 부각시킨 공로는 인정하지만, 실업문제를 20대 대졸자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한계를 보였다는 것이다.
“한 달에 88만원도 벌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청년실업자라고 해도 그 안에는 다양한 그룹들이 있거든요. 고졸자들, 지방대 졸업자들, 10대 실업자들, 서른이 넘은 취업준비생들. 그런데 인턴제 등 정부가 내놓는 청년실업 대책들이란 게 하나같이 20대 대졸자에게 맞춰져 있으니 문제인 거죠.”
주씨는 “앞으로 백수들 중에서도 좀더 취약한 그룹을 대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으니 “그들을 위한 목소리는 없잖아요”라고 경쾌하게 대답했다.
일본의 백수활동가 마쓰모토 하지메가 쓴 ‘가난뱅이의 역습’(이루)이 최근 국내에서 출간됐다.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을 부제로 단 이 책은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상천외한 백수운동들을 소개한다. 전국빈민학생총연합, 프리터노조, 노숙동호회 등 수많은 백수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월세 공짜를 위한 데모’ ‘가난뱅이가 세상에서 설칠 수 있게 하라’ ‘이젠 뭔가 보여줄 수밖에 없다’ 등 희한한 이름을 내건 시위들이 벌어진다. 가난뱅이를 대상으로 한 매장과 술집, 신문, 잡지 등이 생겨나는가 하면 도쿄 변두리에는 ‘가난뱅이 거리’가 형성되는 중이다.
책을 번역한 김경원씨(한양대 비교역사연구소 전임연구원)는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하여 ‘가난뱅이’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새로운 삶-운동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지나친 일일까”라고 썼다. 주씨는 “백수운동이 정치운동으로 전화될 가능성은 높지만 단기간에 그렇게 될 것 같진 않다”면서 “시위도 필요하겠지만 대안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덕한 누구
백수생활의 달인이자 백수활동가.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직장을 뛰쳐 나왔다. 유럽과 일본 등을 여행하면서 백수활동가들과 교류했고, 국내 최초의 백수단체 '전국백수연대'를 조직했다. 2006년 설립된 희망청(청년실업자 지원 단체) 초대 청장을 맡았으며, 올해는 노동부의 '뉴스타트 사업'(취업지원 프로그램)에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기 위한 백수연대 산하 사업단 준비에도 한창이다. 1969년생이고 미혼.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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