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국가 원로들과 사회 전문가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우리 사회가 반목과 질시를 넘어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성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싸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면 결코 불행한 역사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민장 기간 전국적으로 500만명이 동참한 추모 열기를 국민통합과 사회발전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만델라 정신이 필요하다=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2일 “일과성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라는 큰 충격을 분파적이고 반목적인 정치 역사를 바꾸는 계기로 삼는 냉철한 상황인식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국민의 품격을 높이는 계기로 삼자고 했다. 정치수준은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인 만큼 정치권만 탓할 게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들의 허물을 성찰하고, 사회적 의식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만델라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당선 후 일련의 화해 조치를 통해 흑백간의 영구평화를 도모했던 정신이 현재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이는 분열과 반목의 각박한 정치현실에서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가 화해와 통합의 염원이었다는 점에서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김 교수는 “진보, 친노 세력이 투쟁과 저항으로만 일관해서는 노 전 대통령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다”며 “우선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야 하며 함께 할 수 있는 통합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종 교배 사회는 파멸한다’=원로들은 국민통합의 시작은 ‘다름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진보는 보수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수도 진보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하하는 자극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버리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또 공존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독식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는 “지역적·이념적 대립구조의 결과물로 ‘싹쓸이’ 문화가 계속돼 왔다”며 “그러나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모든 권력을 독식한다는 사고 구조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종 교배는 결국 파멸한다”면서 “이종이 존재해야 자극을 받고 발전도 한다”고 강조했다.
투쟁 일변도의 정치 문화도 쇄신 대상으로 꼽힌다. 원로들은 정치권에서 국민장 이후 펼쳐 지고 있는 ‘정치보복 사죄 공방’ 역시 공존 의식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강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 체제는 이미 만들어졌고 이제 성숙한 단계로 들어서야 한다”며 “성숙의 좌표는 바로 적개심과 투쟁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개혁도 고민해야=비극적이고 불행한 대통령이 또다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국가 시스템 변화나 제도 개혁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는 의견도 있다.
이부영 전 의원은 “반복되는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불행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원인”이라며 “견제와 균형이 적절히 이뤄지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현재와 같이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면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은 휘두르고 싶은 유혹을, ‘물러난 권력’은 정치 보복을 의식해 죽은 듯이 지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라도 충실히 운영하면 이같은 불행을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정권 임기말이나 정권 교체 후 어김 없이 대통령 관련 부정부패 사건에 매몰되는 현실을 막기 위해 측근이 아닌 중립적인 인사를 청와대 민정에 배치시켜 대통령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문제 의식을 갖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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