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시인 문영훈 “마주하고 있으면 황홀해”

북극의 시인 문영훈 “마주하고 있으면 황홀해”

기사승인 2009-06-04 16:54:01
[쿠키 문화] 문영훈(53)은 재불시인이다. 1987년 공부하러 프랑스에 갔다가 눌러앉아서 22년 세월을 보내고 있다. 파리 동쪽 뱅센느숲 입구에서 혼자 사는 그는 자신의 파리 생활을 이렇게 설명했다.

“뱅센느숲에 거주하면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적합한 공간을 찾은 후, 계속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프랑스 문단에 진입한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1999년 ‘수련을 위한 노래’라는 제목의 불어시집을 내놓았을 때, 한국인이 프랑스어로 시를 쓴다는 사실에 양국 문단이 놀랐다. 이후 ‘무한의 꽃’(2002), ‘꽃의 나그네’(2005) 등 꾸준히 프랑스어로 시집을 발표하고 있다.

“불어를 내 표현수단으로 가질 수 있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내 언어적 취향이 불어와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고, 내 감수성이 불어와 편하게 어울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는 그는 “유럽 독자들과 만나면, 불어로 된 시지만 동양적인 정서나 사상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는 반응이다”라고 말했다.

파리에 사로잡혀 언어까지 바꾼 문영훈을 근래 다시 사로잡은 곳이 있으니 바로 북극이다. 2007년 8월 북극에 발을 디딘 이후, 그해 가을에 3주간, 그리고 2008년 초에 두 달을 북극에서 보냈다. 떠나자마자 북극은 다시 그를 불렀고, 문영훈은 기갈 들린 것처럼 연거푸 북극선(북위 66도 33분)을 넘었다.

“황홀해. 혼자서 북극을 마주하고 있으면.”

시인은 결국 이렇게 말했다. 젖빛을 머금은 부드러운 빛, 300만년 시간의 눈덩어리들이 빚어내는 태고적 풍경, 완벽하게 고립된 세계 속에서 경험하는 정신적 충만감 등 북극의 느낌을 설명하기 위해 한참을 얘기하던 그가 마지막에 골라낸 말은 “황홀해”였다.

그렇다고 그가 아름다움을 찾아 떠도는 부류는 아니다. 그는 그의 시가 보여주듯 어쩌면 몸과 물질의 세계와 필사적으로 대결하며 정신과 자신을 온전히 만나려는 수도자에 가깝다. 문영훈은 “철새와 고래들이 때가 되면 근원으로 돌아가듯 인간인 나도 그런 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며 “알 수 없는 부름을 쫓아서 북극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코펜하겐에서 비행기로 4시간 반이면 닿는 북극. 문영훈은 그곳에서 빙하들을 구경하고, 사냥꾼을 따라 다니고, 마을을 오가며 사람들을 사귀었다. 그리고 시가 흘러나오는 순간이 오면 시를 썼다. 최근 출간된 ‘북극선 이후’(서해문집)는 문영훈이 시인의 감수성으로 써낸 북극 이야기다. 그가 모국어로 쓴 첫 책이자 첫 산문집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자들을 북극의 낯선 풍경 속으로 안내할 뿐만 아니라 시공간의 개념이 허물어져 없는 북극의 정신 속으로 데려간다. 북극의 자연 뿐만이 아니라 설화, 역사,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시와 사색이 담겼다. 이 책을 단순한 여행서로 볼 수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는 “여행기나 수필이라기 보다 명상록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가 북극에서 챙겨온 시와 사진은 프랑스 아리치 출판사에 의해 시사진집으로 출간된다. ‘북극선 이후’의 불어판도 준비되고 있다.

문영훈은 “대륙빙하 깊숙히, 원주민이 살지 않는 더 북쪽지역으로 올라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파리로 다시 북극으로, 그렇게 점점 더 외진 곳으로 찾아가는 문영훈의 발걸음은 인간 정신의 맨안쪽을 찾아드는 행보인지도 모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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