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인터넷 상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이슈를 공학, 사회학, 인문학 등의 학제간 연구로 접근하기 위한 ‘소셜웹연구회’가 최근 창립됐다. 초대 회장을 맡은 한상기(50·사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는 검찰이 유투브(동영상 전문 사이트)에 자폐증 어린이 학대 동영상이 올라온 것과 관련해 구글 임직원들을 기소했고, 영국에서는 정치인들이 페이스북(개인간 교류 사이트)의 정보를 1년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하는 법안을 논의하고 있지요. 전세계 정부가 인터넷에 대한 규제를 고민하는 중입니다.”
그는 “인터넷을 무한한 자유의 세계라고 보는 시각은 이제 의심받고 있다”면서 “여러 사람이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사회에 법과 제도, 윤리 등이 필요한 것처럼 온라인세상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통한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다는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산학과 출신으로 대기업 직원, 벤처컨설팅회사 창업자, 포털사이트 전략담당최고경영자(CSO), 벤처기업 대표 등을 거쳐 올해 카이스트 강단에 선 그는 “인터넷의 본질이 익명성이라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건 미국에서조차 동의하지 않는 얘기”라며 “익명성이 난무하면 신뢰라고 하는 사회적 자본이 무너진다는 연구가 외국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미네르바’ 사건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온라인세계에서는 성별이나 나이, 지위 등과 관련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걸 ‘아이덴티티 디셉션(Identity Deception)’이라고 하는데, 미네르바도 이 부분에서 굉장한 실수를 했다고 생각해요. 그가 금융분야에서 굉장한 전문가인척 했잖아요. 그게 바로 아이덴티티 디셉션에 해당하는 거죠. 이런 일이 자꾸 생기면 인터넷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공간이 됩니다.”
그렇다고 그를 규제론자로 보긴 어렵다. 그는 검찰이 ‘PD수첩’ 작가의 이메일을 공개한 것에 대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념이 너무 없어요. 어떤 행위가 있어야 처벌하는 것이지 생각만 가지고 처벌하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외국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아마도 ‘미쳤냐?’ 이런 반응이 나올 겁니다.”
그는 인터넷 실명제와 관련해서도 신중한 입장이다. “페이스북은 실명, 트위터는 익명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처럼 반드시 어느 한 쪽이 옳다고 말할 문제는 아니지요. 다만 익명성이 보장되려면 추적가능성이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세계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익명을 보장하더라도 누군가 문제를 저질렀을 경우엔 그 사람을 추적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인터넷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이 크게 증가하는데도 사회학자, 인문학자, 법학자 등의 관심이 그동안 너무 적었다”며 “인터넷 문화, 윤리, 규제, 역학 등에 대한 국내 연구가 매우 미흡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옥스포드대, 하버드대, 스탠포드대 등에 있는 인터넷소사이어티 연구소들을 거론하며 “인터넷과 사회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연구소가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셜웹연구회에는 장덕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홍기(서울대 치의과학과 교수), 윤종수(논산지원 판사), 허진호(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강태진(KT 전무) 등 3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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