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길고 긴 6월의 마지막날이었다. 직원을 잘라야 하는 기업주나 해고당하는 근로자 모두 서로 눈을 피했다. 영세 기업일수록 더 답답했다.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운데 형편상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서울 둔촌동 보훈병원 비정규직 조리사 선명애(44·여)씨. 그녀는 하루 종일 뉴스에 귀울 기울였지만 남은 건 허탈감 뿐이었다. 2007년 3월 입사해 수개월 단위로 7차례나 재계약을 했던 선씨. 정규직 전환이 꿈이었지만 6월 말로 고용계약이 해지되면서 직장을 떠나야 할 처지다. 지난 3월부터 일감이 없는 남편(48·인테리어업)과 고등학생인 아들 2명을 두고 있는 그녀는 “경기가 안좋아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경기도 남양주의 한 중견 제조업체에서 6월 초까지 근무하다 해고된 강모(36)씨. 회사 측도 강씨가 계속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데다 강씨 역시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법 개정을 통해 일만이라도 계속 하고 싶었다. 아내와 어린 딸(4)을 둔 강씨는 “이러면 우린 어쩌라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경기도 김포에서 직원 20여명과 작은 가구공장을 운영하는 A씨도 이날 직원 10명을 내보냈다. 그는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못했다. 어려운 회사 형편을 잘 알고 있는 그들도 “사장님이 무슨 죄가 있나요”라고 울먹였다.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 시한 마지노선인 30일.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계약 해지 통보가 잇따랐다. 회사도 근로자도 원치 않은 일이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사측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관련법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단 계약을 해지하는 분위기가 대세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 도리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명지대는 지난해부터 행정조교 100여명을 잘랐다. 지난 1월 해고 통보를 받은 C씨는 “모교이자 첫 직장, 정규직과 다름 없는 일을 7년이나 해 왔는데 한순간에 해고됐다”면서“분노와 배신감에 허탈할 뿐”이라고 말했다. 해고된 행정 조교들은 학교 정문 옆에 천막농성 중이다.
농협중앙회는 전국에 걸친 비정규직 직원 5500여명 중 계약기간이 끝난 직원들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 배사명 농협중앙회 노조위원장은 “상사가 오늘부터 그만두라고 하거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하면 다음 날부터 출근을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해고도 잇따르고 있다. KBS는 6월 말로 계약 기간이 끝난 18명과 계약을 해지했고, 국가보훈처 산하 보훈병원도 조리사와 간호조무사 등 20명에게 해고했다.
무더기 해고가 단행되면서도 한편에서는 인력난에 시달린다. 비정규직보호법이 태생적으로 갖는 한계다. 경기도 수원의 군소 주물제작 업체 B사는 최근 계약기간이 끝난 비정규직 근로자 2명에 대해 해고를 통보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지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며 “당분간 철야 작업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든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정규직들도 착잡한 심정은 마찬가지다.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는 30일까지 사용기간(2년)을 채워 계약 해지를 통보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각각 31명, 148명에 달한다. 주공의 정규직 직원은 “법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전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근속기간 2년 이상' 기간제 노동자는 최대 40만명 안팎”이라며 “7월부터 2년 계약기간이 만료돼 실직 위기에 놓이는 인원은 한 달에 4만1000명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항 노동전문기자,박재찬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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